brunch

자연과의 새로운 외면(外面)

그의 주체로 만신이 침적(沈寂)하다.

by 돌연해

몇 달 전, 정말 오랜만에 바다를 보러 간 적 있다. 아마 약 4~5년 만에 보러 간 것 같다. 그 때면 나의 사상은 순수함과 순진함 뿐이었던 때이다. 아마 독자가 생각하는 때 보다도 어릴 때일 것이다. 지금도 어린 나이니까. 그렇다 보니 그때는 바다를 보고도 어떠한 느끼는 것이 없었다. 그냥 아주 큰 물,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액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았다.


그때 바다에서의 남은 기억이라곤 하나밖에 없다. 부모님이 바다를 보며 여러 생각을 마치 어두운 곳에 은은한 불빛이 비치는 방향성으로 옮겨진 장소에 자리 잡은, 글씨가 둥둥 떠다니는 고인 물에 빠진 듯 느끼고 있는데 *빨리 숙소나 가자고#@%&!*라고 했던 기억이다. 어릴 때 바다에 대한 기억은 딱 이거 하나뿐이다. 그때는 꽤 많이 갔었는데도 말이다.


그 뒤 정말 오랜만에 바다를 간 것이다. 사실 그때 바다를 간 것은 내가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때여서, 나의 선생님이 바다라도 가보라고 하셔서 가게 된 것이다.




차를 타고, 양양 해수욕장을 갔다. 시간은 이미 어둑어둑해졌을 때이다. 가는 길에 두 통의 전화가 아빠에게 울려왔다.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바다 좀 가고 싶다고 말한 것을 어찌어찌 아빠가 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두 분 모두 공통으로 들려온 반응이 '귀엽다'였다. 어떻게 아무 관련도 없을 두 분이 같은 단어를 내뱉은 지는 모르겠으나, 나름 신선했다. 어떤 느낌으로 말한 건지도 알고 말이다.


그 뒤 나는 차에서 잠에 들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우리 집에서 그 해수욕장까지 7200초는 족히 걸린다. 아! 너무 오래 걸리는 것 아닌가! 그대로 난 환상적인 잠 기술을 선보이며 검은색으로 빠져 들었다. 어쩌면 카오스로 돌아갈 수도 있다.


웬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가 일어나랜다. 내 눈앞의 검은색을 지우며 청각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다행히 카오스로 돌아가진 않았나 보다'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내 앞에 공감각적 두려움으로 몰려오는 우렁찬 야수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내가 잘못 듣고 있는 소리인 줄 알며 얇게, 하지만 방대히 퍼진 의심이 생기는 마음으로 차를 나왔다. 그러자 만물의 이치가 깨부수어져 버렸다,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아닌가!


아! 아니다, 차 안에서 밖으로 나왔는데 밖에서 발생하는 공기의 진동이 더 작게 들릴 일이 없다, 만물의 이치는 멀쩡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난 괴리감을 아주 거대하게 느끼며 이 소리의 근원이 무엇인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뒤를 돌아보니 건물 공사 현장이 하나 있었다. 저기서 나는 소리인가? 아니다, 이미 해가 저문 지 꽤 된 시간이라 그럴 일이 없다.


그 반대쪽을 보니 여러 식당 따위들이 있었다. 저기서 나는 소리인가? 나는 *참으로 난해한 문제*를 맞힌 줄 알았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어보니... 아니다, 저기에서 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소리이다. 그 장소에서 낼 수 있는 소리의 예상치 데시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거대하고 묵직한 소리였다.


이 과정들이 약 4초 만에 쏜살같게 지나간 뒤 내가 바라본 곳이 바다이나, 아쉽게도 정답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답이 무엇인가? 나는 아주 거대한 미궁에 빠진 것만 같았다.


미궁에 빠지곤 해답을 이상으로 삼고 답지를 보니―, 이런! 소리의 근원은 바다다! 난 온갖 두려움에 휩쓸리며 검은 물결에 잠식되는 것을 느꼈다. '그냥 돌아갈까..?'라는 생각도 약간 들었지만, 그래도 그 소리는 뭔가 뭔가 구미가 당기는 소리였다. 매우 큰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그래도 그 거대한 물결의 소리에서 나름의 매력이 보였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몇 걸음 걸어도, 여전히 그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두려움을 계속 계지(繫止)하고 있다 보니, 한 생각이 떠올랐다. '왜 그리스 로마 신화에 포세이돈이라는 신이 있을는지'라는 가지고 있지도 않던 의문이 저절로 풀리게 되었다. 당장 지금 약 100m 정도 떨어진 바다에서 거대한 포세이돈이 솟아오르거나 튀어나와도 현실과의 괴리감은 전무할 것 같았다.


더 걸어 나와 드넓은 모래사장으로 발을 디뎠다. 모래의 촉감은 생각보다 좋았다. 그런데 그것에 생각이 잠식될 단 한 갈피의 기회조차도 없이, 바다와 가까워질수록 포세이돈에 대한 생각만이 참으로 점차 현실이 될 것만 같아 두려움에 떪과 동시에 언제쯤 나올지 궁금해하였다. 신을 눈에 담다니, 세상에 그런 경험을 할 기회가 단 한 번이라도 있겠는가?


바다와 점점 가까워졌다. 멀찍했던 것이, 한 발짝... 두 발짝... 점점 가까워 갔다. 가까이 올수록 두려움은 조금씩 증폭되기도 하였다.


약 2m 정도 떨어진 ―포세이돈의 외적 목소리를 더더욱 우렁차게 들을 수 있는― 거리까지 왔다. 거기서 좀 구경을 해보다가, 바로 코앞까지 가보기도 하였지만 아주 넓은 두려움과 파도가 나를 곧 삼킬 운명이 얼마 남지 않을 것 같아 다시 뒤로 가기도 하였다.


처음 이렇게 가까이 갔을 땐 솔직히 별 느낌을 느끼지 못하였다. 단순하게 시원히 상쾌해지는 기분만이 거의 전부였고, 약 8.88%의 다른 기분이 느껴졌는데 의식은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충분하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뒤에 있던 의자로 자리를 옮겼다. 아빠가 돗자리를 가져와서 모래 위에 앉기도 하였는데, 갑자기 모래에서 거대한 스콜피온이 튀어나와 나를 무는 일을 포세이돈이 포착하여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솟아올라 *생물학적으로 엄청난 가치가 있을 스콜피온*을 타나토스로 보내 버리는 걱정... 을 하지는 않았고 그냥 불편했다.


의자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느끼는 것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아빠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데, 그날은 해무가 많이 끼고 파도가 꽤나 치는 날이라고 하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빠의 말대로 어떠한 뿌연 것이 아주 광활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모래사장 위에 반투명한 구름같이 생긴 것이 겨우 내 키와 비슷한 높이에 떠있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처음엔 내 눈이 잘못되었거나, 갑자기 이 세상의 오류 잔해가 눈앞에 떡하니 나타나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증명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그럴 일은 없었다. 그 구름같이 생긴 신기한 해무를 사진으로 찍어보기도 하였는데 카메라가 담지를 못하여서 아쉬웠다.


실제로는 이 사진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내 사진 실력이 괴리감을 형성하는데 적잖은 기여를 하였다.


앉아있다 보니 우렁찬 소리가 나도 모르게 적응하였다. 그래서 바다 앞으로 가서 걸어 보았다. 바다의 숨결, 파도가 코앞까지 와서 나의 호흡 기관을 덮치기 충분한 거리까지 다가가서 해안을 따라 걸어 보았다.


바다에서 10m 정도 떨어져 있던 그 의자와는 확연히 다르게, 직접적으로 바다를 느낄 수 있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로 다시 가까이 와보니 시원히 상쾌해지는 기분, 그것이 나를 더듬으며 보듬어 주는 듯하였고, 또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였다. 후에 8.88%의 그 기분을 위해 열심히 상을 차리는 것으로 짐작하였다.


해안을 따라 먼저 오른쪽으로 걸었다. 걷던 중 파도에 신발이 한 번 흠뻑 적셔진 것은 유감이다. 쭉 걷다 보니 멀리서부터 보이던 폭죽들이 보였다. 화약 냄새를 맡고, 반대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 있던 곳으로 돌아왔는데, 또 다른 사람이 폭죽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성한 바다 앞에서 폭죽 좀 그만...


이때가 1시간 30분쯤 지났을 때였던 것 같다. 슬슬 배가 출출하여 밥을 먹기 위해 잠시 바다에서 좀 떨어졌지만, 내 마음속에서의 거리는 거의 같았다. 그 우렁찬 소리는 여전히 의식하든 못하든 들리기도 하여서 말이다.


그때 내 빈 위를 채우기 위해 간 곳은 가까이 있던, 무려 아주 맛난 횟집!


이 아니고 편의점...... 라면 먹었다. 그래도 나름 맛은 있었다, 집에서 먹는 것과 광활한 바다를 내 앞에 두고 먹는 것은 일맥상통하는 것 사이에서도 여러 차이가 있지 않겠나!




바다 앞으로 다시 나아갔다. 또다시 공감각적인 무어를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 노력하다가, 문득 한 궁금점이 물고기 마냥 튀어 올랐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바다는 끝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끝이 실제 바다의 끝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바다의 진면모를 본다면 과연 어떨까?


나는 나의 눈만을 마치 앞으로 옮긴 것처럼, 저 멀리 있는 허구의 끝을 강렬히 깨부수며 관통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하니 놀라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다의 거대함, 그것을 아주 직접적으로 교감하듯이 느낄 수 있었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것이다. 집중 좌표를 40° 정도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옮겨도 신기하게 저 멀리 앞을 바라볼 때와의 괴리감이 전무하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전까지 보던 바다는 거대한 숲 중 시선을 이상한 곳에 두다 보니 판이 보존형 경계로 인해 이동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 ―마치 두 은빛 막대가 어떤 어두운 계열의 나무로 이루어진 틀 안에 있을 때 하나를 오른쪽으로 스무스하게 밀고 다른 것은 반대쪽으로 밀은 듯한 현상― 과 같은 아주 복잡한 과정에 의해서 두 가지의 방향적으로 나아가는 이상이 다르게 느껴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숲을 향해, 마치 어렸던 과거를 회상하듯이 시선을 옮기니 그것이 아주, 참으로 완전한 하나로 이뤄져 종합이 된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살면서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을 주기에 참으로 담뿍했다.


그것은 가까워지기 매우 난해한, 갈피가 절무하며 매끈하기 그지없는 판들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것과 가까워지려면 판들 사이의 틈을 찾거나 그 판들을 깨부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점(dot)의 눈이 탁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그 여러 개의 판들, 즉 거대한 판과의 거리는 달라지지 않겠지만 당신이 염원하는 것만이 제물로 다가올 것이다. 그것은 마땅히 당신에게 순수하고 거대한 구체로 상상되는 마음을 선사해 주지만, 그 사이의 적정한 경계를 결연히 지키는 지혜를 내비친다.




저 멀리에서 우리가 서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파도들 ―마치 과학적인 움직임을 통달한 듯한―, 어떻게 저 멀리에서부터 이렇게 가까이까지 차분하고 결의 있게 다가오는 것인가?


저 멀리 보이는 허상의 큰 섬, 저것은 무엇인가? 해무로 인해 창조된 신기루와 같은 것인지, 아니면 일본인가? 일본일 리는 없다. 그렇다면 그 해무는 어떻게 이런 굉대한 바다 위에서 대담히 마술을 펼치고 있는 것인가?


저 멀리 왼쪽에 보이는 등대, 당신은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설치된 것인가, 아니면 당신 역시 바다를 향한 찬미를 위해 그곳에 우뚝 서 있는 것인가!


아! 저 멀리, 아니 이 가까이 있는 아주 웅대한 이 바다를 보아라! 그것의 광활함은 나를 아주 작은 점(dot)으로 만들어 내가 자연에 압도되는 아주 거룩한 영광을 주기에 넘치도록 충분했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의 무한한 과정과 위풍을 보며 단 한 가지의 경미한 흐트러짐과 틈조차도 없는 경외지심(敬畏之心)을 느끼었도다! 이것은 평소에 흔히 어떤 것을 칭찬할 때 말하고 느끼는, 그런 두터운 껍데기를 쓴 경외지심이 아니었다. 참으로 순도 100%의, 곧 압도되는 내면의 감정으로 인해 순수만으로 가득 들어차 있는 경외지심이었다.


경외지심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바다의 모습에 대해 무지할 때, 여러 복합적인 과정을 마치 투명한 화살처럼 관통하여 무지로부터 해탈하며 느꼈던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도다,


그냥 아주 큰 물,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액체. 그것은 내가 정말 오랜만에 방문하였을 때 그 누구보다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또한 그 반기는 모습을 보이는 중에도 그때는 발견하지 못하였던, 그 여일한 갈피의 위풍은 너무나도 멋거리지었다. 아무리 우리가 정말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나지 못하여도, 바다는 당신을 완곡히 반겨주며 당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여러 감정의 기단을 마련해 줄 것이다.


그러나 그 오랜 시간은 사실 그에게 있어 우리가 눈을 깜빡이는 시간과 비슷하게 될 것이니, 아! 이 세상에 이토록 지고에 가까운 분이 우리를 옆에서 보듬어 주고 있으니, 이거 참으로 감사하지 않은가!


그런 아름다운 장면을 죽은 후에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이 글의 커버는 그 사진들 중 가장 잘 찍은 사진이다.


커버 사진. 빨간 빛은 등대 불인데 주기를 가지고 반짝여서 타이밍 맞추는 것이 꽤나 힘들었다.


몇 가지 요소를 갖춘 사진을 찍으려고 1시간 정도 동안 찍었던 것 같다. 여담으로 나는 살면서 셀카조차 한 장도 찍어보지 않은 사람이라 여러 사람의 비율을 망가뜨릴 수 있는 아주 비범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렇게 포세이돈께 실례를 범하다가, 이 사진을 건진 뒤 몇 분 있다가 그 천상의 목소리를 품고 다시 지구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 목소리를 품고 와도 역시나 코키토스는 싸늘하기 그지없다. 바다를 보고도 아무것도 느끼질 못할 황량한 능시(凌凘)와 그 속의 다중(多重) 배역(背逆).


그 천상의 목소리는 나에게 그의 모습처럼 아주 거대한 기억 조각으로 남아있다. 언젠가는 그를 만날 수 있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