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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적

인간적

by 돌연해

간만에 내 이야기를 할 거다.




내가 가장 좋아하며 가장 싫어하는 내용이랴. 그럼에도 이유 하나 간단하다. 오늘이 내가 첫 글을 올린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그는 아주 비인간적이다. 그게 바로 나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 1년을 왜 기념해야 하지? 수직선에서 0은 명예로운 역할이 명확히 있다. 그는 양수와 음수 정가운데서 그들의 균형을 살핀다.


그러나 1년이 그러한 명예로운 역할이 있는가, 정녕 그 1년이 아주 소중하고 특별하였다 할지라도, 정녕 그러한 언행을 땅바닥에 처박아 버릴 것이라면 다른 해는 소중하고 특별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시간은 가고 있고 그 숫자에는 전혀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이 양수다, 그것이 음수다. 그냥 지나가던 수직선에 있던 한 점들이다.


그런데 그 수직선 중 가장 멍청한 사람이 누구인가? 비인간적인 배우를 연기하는 평범히 인간적인 사람이다. 그게 바로 나다! 1년을 기념하지 말라는 말을 1년을 기념하며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노라면 0도 아무런 의미 없다. 아무 의미 없는 양수와 음수 탓이다. 그냥 열차가 지나가는 선로일 뿐이다. 그러나 그걸 발견한 생물이 인간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의미라는 것을 부여하노라. 그런데 인간들은 그저 발견을 했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리하여 향락에 젖을 축제를 벌이며 기쁜 음주를 가쁘게끔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세상이 다채로워지고 망해가는 것이랴.


참으로 평범하고 비인간적인 인간 어찌하였든 별 것 아닌 걸 끄적인다. 나는 빅뱅과 함께 터진 수직선을 사랑한다.




예전 글들을 대충 읽어 보았다. 세상에! 또다시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내 글에 앞에서 떡하니 앉았다 일어서기를 하던 그 영웅은 지금 어디 갔단 말인가?


문장은 가관이다. 성당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혀를 핼쑥하게 내밀면서 무서운 모자와 가면을 바보처럼 뒤집어쓰고 있는 가고일도 그 문장들 보다는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가고일이 조금의 아름다움과 맞바꾼 것이 무엇인가? 가고일의 목적이다. 그 가고일은 목적을 잃는 대신 조금 아름다워졌다.


내 글이 그렇다! 지금 이 거지는 뭐 하는 건가? 바보처럼 길거리에서 대왕 바나나를 고의로 짓밟고 넘어져 단단한 화강암에 팔꿈치가 와장창 까지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고 나는 노숙자가 되었다! 숙자는 위대하다!


거지의 문체 그러하다. 그 문체는 아무리 봐도 광대 같듯 놀랍다. 0의 눈에는 ―표현이 어려운데― 매우 비인간적인 문체다. 하데스가 어리석다면 저런 글을 쓰지 않을까라며 자화자찬을 한다.


처음으로 집어진 책 《신곡》을 보며 얻은 건 전혀 없지만 책을 읽으며 얻은 것은 있다. 독서라는 것과 문체다. 독서는 그렇다 치나 난 단테의 문체가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다. 그걸 흉내 냈던 것이 과거 글들이다. 근데 전혀 안 비슷한데?


단테의 문체는 매우 인간적이다. 지금도 읽다 보면 대왕 바나나를 밟은 길거리에서도 친히 일으켜 주는 대범한 사람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내가 쓴 것은 매우 비인간적이다. 하데스도 감탄할 것이다! 나를 납치해 볼 테면 해 봐라!


음수의 글들을 보다 보면 아주 그냥 신나서 마구마구 토해내는 것이 생각난다. 비유적인 토가 아닌 진짜 바이트거니와, 아주 미세한 관건이지만 아무튼 신나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그때가 좋았는데..." 나약한 인간이여! 그대는 그렇게 인간보다도 못한 대왕 바나나처럼 인간을 미끄러지게 양념 치며 슝 날아갈 것인가! 원숭이의 바나나가 되고 싶지 않다면 당신이 그 어떤 원숭이보다 더 원숭이인지 생각해 보라! 원숭이여!


내 삶 원칙...이라 하면 길거리 위 거창한 허례허식이다. 바나나 껍질에 붙어 있는 상품 라벨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과거는 과거다. 그게 최선이다." 세상에 이런 바나나 껍질이 있다면 바로 두 발 벗고 맨발로 집을 나서 위대한 바나나 껍질에 붙어 있는 상품 라벨이 있을 루브르 박물관을 털어버릴 것이다.


과거를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많은 게 아니라 인간이면 그러하다. 그러나 나는 과거를 전혀 미워하지 않는다. 아무리 현재에 생각했을 때 비합리적인 선택이었더라도, 그것이 과거의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신뢰할 수밖에 없다. 것이 짐승이다!


흔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나는 이 말을 별로 마음에 두지 않는다. 도저히 신뢰하고 공감해도 그 부식물이 남아 있을 때서야 하는 말이다. 그보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게 그때의 최선이었다." 판단 능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면 어떠한가? 그조차 과거의 당신이다. 판단 능력이 부족했던 당신의 과거의 최선의 선택이 현재의 당신을 창조해 냈다!


나는 내 모든 과거가 현재의 나를 조각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곳에서 조금의 변화만 생겨도 현재의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무튼 최고는 현재의 나다. 간의 독자여, 그래도 불편하다면 과학자가 돼서 평행 우주나 가보아라.


이 짐승이 무엇인가? 비인간적인 것이다. 1년을 왜 기념해야 하는가? 까닭은 수직선이다. 과거를 왜 후회하는가? 까닭은 수직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살음이란 시간의 덩어리다. 계속 붙이고 붙이는 맛있는 고깃덩어리다. 그중 한 부분을 부정한다면 모든 부분이 썩어빠진다. 아직 굽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움이란 죽음이다.


열심히 조각하면 고기 덩어리는 신기한 모양이 된다. 그러나 그전에 모든 부분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렇다면 고깃덩어리로 그 어떤 것도 만들 수 있다. 가고일, 대왕 바나나도 당연 만들 수 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인간 고기잖나.


이것으로 나는 아무 때나 아무렇게 *흥* 거리며 멋진 말을 펑 만들 수 있다. 바로 해보랴? 바지에 똥이나 퍽퍽 싸던 내가 없었다면 현재의 내가 없었다. 좀 더 해보랴? 아무 말이나 지르던 멍청이가 없었다면 현재의 나는 없었다. 좀 더 해보랴? 이 글을 보고 있는 독자 당신이 없었다면 현재의 나는 없었다. 보라, 굉장히 멋져 보이지 않은가? *흥*


조금 멋진 말로 나비 효과라고 하지 않던가. 우주의 날갯짓... 은 너무 거대하네. 미토콘드리아의 날갯짓이 저기 서 있는 나무의 형세에 요리조리 마법을 마구마구 부리며 위로 아래로 위로 아래로 위로 아래로 위로 아래로 돌리며 장난감처럼 난쟁이의 끼를 냅다 보인다.


아주 멋진 말로 카오스 이론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것이 바로 난쟁이의 두뇌이자 천재성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성이 아닌 난쟁이성이다. 그리하여 비인간적이다. 우리는 난쟁이 보다도 못하다! 차라리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낫지 않나.




나는 이런 글을 가장 싫어한다!


나약하고 허약한 인간의 완성체를 지극히 드러낸다. 그것은 비인간적이라 부른다. 그래도 오랜만에 휘갈겨 쓰니 재미는 있다. 그것은 인간적이라 부른다.


현재 글들은 를 베이고 보아도 교만한 도둑놈 심보로, 누군가의 보물을 훔쳐 달아났다. 차라투스트라의 보물이다. 아니 세상에 그렇게 반짝이는 보물이 있을 수 있으랴? 그 보물을 훔치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인간적이라 부른다.


멍청한 도둑 난쟁이의 은신처는 처참하다. 무거운 보석들만 잔뜩 있고 정작 수레 하나 없다. 그리하여 그 보석들을 옮기려면 수직선 하나가 필요하다. 그것은 너무 길다. 지옥과 연옥과 천국도 그보다는 짧으랴.


반짝이는 보석들은 충분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은 금방 산화한다. 수레도 없는 불쌍한 도둑놈을 산소는 마구잡이로 남획한다. 그리하여 물고기들은 기체들에게 관棺을 선물당한다.


아가미가 없고 폐를 가진 돌연변이 물고기 35마리가 8760시간 동안 그리하여 생존했다. 학자들은 그 물고기 돌연해라고 부른다.


돌연변이는 번식을 한다. 그리하여 몰래 증식하고 악취를 뿜어댄다. 학자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무려 나만 아는 사실이다. 놀랍지 않나? 너무 놀라운데?


그 물고기들은 번식하여 어떤 기형을 만든다. 그 도형은 신선하다. 그런데 아무도 이 놀라운 도형을 모른다.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섬에 그들이 점거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발견되려면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다. 커다란 대륙이라는 것이 이상한 데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그곳을 직접 가지 못한다. 그곳에서 돌연변이들은 자기장을 창조하고 뜨거운 액체에서 유영한다.


그런데 커다란 장애물이 있다. 고체 불순물이다. 4000~6000°C의 액체에서 돌연변이가 창조한 유일한 고체 거대한 섬을 방해하는 거만한 물질들이 둥둥 떠다닌다. 돌연변이의 기억력은 대단하다. 그래서 돌연변이는 그들을 청소하랴 거대한 섬의 존재를 잊는다. 너무 대단하다.


그리하여 거대한 섬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다시금 포식을 장려하노라면 커다란 수직선이 필요하리라. 그리하여 거대한 섬은 아직 능청맞은 허기 상태다. 그러나 돌연변이는 이 사실을 잊었다. 너무 대단하다.


행복의 섬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무화과 열매들이 나무에서 떨어진다. 잘 익어 달콤한 그 열매들은 떨어지면서 붉은 껍질을 터뜨린다. 나는 익은 무화과 열매들에게 불어닥치는 북풍이다." 그리하여 달콤한 열매들은 떨어지고 기생충들은 그를 잡아먹었다.


그리하여 돌연변이는 거대한 섬의 기억뿐 아니라 먹이도 잃었다. 그래서 고온의 액체 속에서는 버티면서 굶어 죽는다. 그럼에도 고체 불순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바보 돌연변이는 고체 불순물만 쳐다보면서 그조차 제거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기생충이 되어 열매를 다급히 찾는다. 그러나 이미 열매들은 소화되고 배설물만 남았다.


그리하여 돌연변이들은 먹이를 잃었다. 돌연해가 먹이를 잃었다.




어떤 미친 이가 간단한 말을 이리 어렵게 하는가. 세 줄 요약, 아니 그도 과하다. 한 줄 요약이다.


열심히 쓰고 있다.


기다려라, 내가 기똥찬 것을 쓰고 있다! 내 생각엔 그러한데 그대들 생각엔 어떠랴?


동시에 어떠한 것은 이러하다.


잘 안 풀린다.


세상에, 98번 묶은 매듭도 이보다는 쉽게 풀릴 것이다. 그까짓 거는 가위로 잘라버리면 해결이다. 인간은 도구를 쓸 수 있다. 그런데 문학도 그러한가? 내 머리를 가위로 잘라버리면 영감이 솟아나는가? 그렇다. 한번 내 머리를 잘라보랴.


머리를 자르면 뭐가 있는가? 열매가 있다. 난 그를 찾으려면 오래 걸릴 터다. 수직선은 너무 길다.


그리하여 시간이 필요하다. 이 말을 위해 기나긴 빌드업을 요리조리 볶았다. 맛있는 요리이랴.


사실 굉장히 오랜만에 글을 올리지 않는가. 한 달은 족히 넘고 두 달이라는 지점에 공백을 힘차게 던져 버렸다. 그러나 그동안 쓴 글의 양은 변화 없다! 여전히 느리지만 여전히 하고 있다! 여전히 느리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어차피 올릴 음식이 같거니와, 조금 더 차려져서 나온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조금만 기다리라. 서빙 시간은 몇 달이다.




시간만 필요하다 해놓고 아무 말 없이 가는 것은 도망이지 않은가? 그래서 그냥 무언가는 적어야 할 것 같아서 적는다. 렇게 적는다면 거창하거니와 뭔가 있어 보이는 게 아주 맘에 든다!




도입부를 요약하면 이러하다.


독수리가 한 손에 칼을 쥔 채 인간들의 길가에 서 자신에게 난도질을 감행한다.


아아,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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