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떴다

수필- 아버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by 김숙진


드라마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에서 금명이의 아버지 '양관식'은 딸 금명이에게 '수틀리면 빠꾸'로 딸에 대한 사랑을 표했다. 가다 아니다 싶으면 돌아오라고, 일등 못 해도 괜찮으니 못하겠으면 냅다 나오라고. 아빠는 언제나 뒤에 서 있을 테니 마음껏 해보라고.

“잘할 수 있지? 수틀리면 빠꾸야. 아빠한테 냅다 뛰어와. 아빠 여기 있어.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금명이는 훗날 이렇게 회상한다. 외줄을 탈 때마다 아빠는 그물을 펼치고 서 있었다고. 떨어져도 받아줄 사람이 있다는 그 말 한마디가 자신을 얼마나 담대하게 만들었는지를.

겉으로 보기엔 공부 잘하는 딸 금명이가 필요 이상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보였고, 공부도 못하고 사고만 치는 아들 은명이는 차별받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엔 ‘누구나 할 수 있는 아빠’라 생각했다. 하지만 회차가 쌓일수록 알 수 있었다. '양관식'은 편애가 아니라 상대적 평등으로 각자에게 맞는 사랑을 건네고 있었다는 걸, 누구나 아버지가 될 수는 있지만, 누구나 그렇게 아버지 노릇을 할 수는 없다는 걸, 그는 끝내 자기 몫의 아버지 역할을 다 해냈고,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떠났다.


나의 아버지는 정반대였다. 뒤에서 그물을 펴고 기다려 주는 분이 아니라, 앞서 걸어가며 등을 보여 주신 분이셨다. 다정한 말 한마디, 그 어떤 설명도 없이 내가 가려던 길 앞에서 ‘이 길은 아니다’라며 가지 말라고 하셨다. 늘 아버지의 말씀은 단칼에 무 자르듯 빠르고 단호했다.


“친구, 그 두 글자 잊어버려라. 공부해야 산다.”

“모임 너무 좋아하지 마라. 내 자랑 아니면 남의 흉이나 본다.”
“한스러운 노래는 듣지도 말고 부르지도 마라. 가사처럼 된다.”
“TV만 보고 있으면 바보 되기 십상이다.”
“덕분에 좀 살자. 남을 위해 살 줄도 알아야 한다.”
“정 헤프게 쓰지 마라. 쓸 때 쓰라고 있는 게 정이다.”
“동지섣달에 오뉴월 만난 것처럼 살지 마라. ”


학생 때는 그런 아버지가 무서웠다. 아버지 말 한마디에 가슴이 시퍼렇게 멍이 드는 것 같았다.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조금씩은 알 것 같기도 했지만,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한 건 아버지가 떠난 뒤였다. 그 말들은 나를 막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한 말이었다. 지금은 내가 나를 믿고 걸어가게 만드는 말이 되어 내 인생의 어록으로 살아 있다.


2000년, 첫눈이 오던 겨울 저녁이었다. 아버지는 아무 연락도 없이 만두 한 소쿠리와 조기새끼 한 꾸르미를 들고 오셨다. “저녁 먹었으니 아무것도 내올 생각 말아라.” 하시곤 소파에 등을 기대 마루에 앉으셨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

짧지 않은 침묵이 흘렀다.

“넌 잘했어. 부모에게 형제들한테도 잘했다. 모두에게 네가 받은 것보다 더 많이 해줬다. 고맙다"


신장암 선고를 받고 병원에 들어가시기 전, 아버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늦둥이 막내딸에게 큰 용기를 내신 듯, 칭찬이 섞인 깊은 위로를 건네주셨다. 나는 그 귀한 순간을 '갑자기 오셨냐'는 투의 서먹한 반김과, 못 알아들은 척하는 어색함으로 흘려보내고 말았다. 다행히 아버지는 말씀이 끝나자마자 일어서셨다. 나는 뒤따라 나서며 “눈도 오는데,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라는 말을 겨우 건넸을 뿐이다.

아버지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타기만 하면 금방 가는 지하철 놔두고" 하시며, 나에게 어서 들어가라는 손짓을 몇 번 하시곤 성큼성큼 눈 속으로 사라지셨다.


하필 IMF,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정신없이 버티는 사이 아버지는 1년 넘게 입원과 수술 그리고 치료를 오가시다 떠나셨다.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아버지는 나를 찾으셨고 종이에 짧은 말을 남겨 주셨다. “잘 살아야 한다.”


몇 년 후, 잠결에 문득 눈을 떴을 때 아버지가 보름달처럼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꿈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꿈에조차 단 한 번도 다시 오지 않으셨고, 대신 달을 보내 주시는 것만 같다. 밤하늘에 둥근달이 걸릴 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만난다.


"수틀리면 빠꾸”라고 말하던 금명이의 아버지도 “수틀릴 것 같은 짓은 하지도 말아라” 하던 내 아버지도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똑같은 자식 사랑이었다. 나는 금명이가 부럽지 않다. 나에게도 그녀의 아버지와 똑같은 아버지가 있었다. 어쩌면 금명이의 아버지보다 더 오래 더 깊게 딸에게 묵묵히 사랑을 건네던 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달이 떴다.


"아버지, 가난한 집의 맏아들로 태어나 早失父母 하시고, 그 많은 동생들과 자식들 키워 내시느라 폭싹 속았수다! 정이 너무 많은 아버지를 조금 더 빨리 이해하지 못해 하영 미안허우다! 아버지, 나 잘 살고 있으니 걱정 허지 맙서! 하영 사랑허우다. 고맙수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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