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에서 나를 태우고

수필 - 공간 심상학 / 자기 연민(Self - compassion)

by 김숙진


지금은 '서울지방병무청'이 영등포구 여의대방로 43길에 있다. 옛날에는 용산구 후암동에 있었다. 나는 마포구 창전동에 살다가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때 용산구 동자동으로 이사했는데, 학교는 부촌이라고 소문난 후암동으로 다녔다. 학교 후문으로 나가서 문구점들을 지나 꼬불탕꼬불탕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큰 길이 나오고, 옆쪽으로 웅장해 보였던 건물이 바로 ‘병무청’이었다.

나는 또 동자동에서 몇 달 못 살고 중구 양동으로 이사했다. 양동은 일제 강점기 및 해방 이후에는 대규모 집창촌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지금은 법정동으로 존재하지 않는 도동과 붙어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언덕길에 형성된 동네다. 동자동 일부, 도동 일부, 양동 일부가 합쳐져 한쪽에 대규모 쪽방촌이 있어 그런가 동네 인식이 안 좋았다. 친구들이 "저기 도동, 양동에 사는 애들하고는 엄마가 놀지 말랬어" 소리를 스스럼없이 하고 다녔다.


양동으로 이사 가고 얼마 안 있다가 남산 '힐튼 호텔'이 건축되기 시작했는데 나는 호텔건물 올라가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다. 가끔 공사장 저 깊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꿈을 꿀 만큼 건축 현장 바로 옆에 있는 집에 세 들어 살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또 전학할 수 없다며 일찍 일어나 걸어 다니라고 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등산하듯 다녀야 하는 언덕길이 끔찍했다. 게다가 하굣길은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친구들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집에 오려면 가파른 언덕길이 두 개가 되었기 때문이다. 후암동에서 양동 진입로까지는 걸을 만했지만 녹색 신호등이 켜져 길을 건너면 그때부터 '호미'가 되어 언덕길을 올라야 했다.

점점 친구들과 같이 하는 하교를 피하고 혼자 다녔다. 아프기라도 한 날은 높은 산이 되어 버리는 길을, 눈 오는 날은 썰매장이라 여기고, 비 오는 날은 물 미끄럼틀이라 생각하며 거의 8년을 오르내렸다.


양동을 떠난 지 12년 후, 생각에 빠져 운전하다 눈앞에 들어오는 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길이 맞아?’ ‘이렇게 낮았어?’ ‘여긴 왜 왔지?’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차를 돌려 몰라보게 달라진 동네를 천천히 뱅뱅 돌았다.


땀 뻘뻘 흘리며 언덕을 오르는 어린 소녀 앞에 차를 세웠다. 소녀는 방긋 웃으며 아무 말 없이 올라탔다. 나는 또 한 바퀴를 돌았다. 책가방을 들고 땅만 보며 걷는 여학생을 태웠다. 또 차를 돌려 어깨 빠질 듯 무거워 보이는 책가방을 들고 쫓기듯 바삐 걸어가는 여고생을 태웠다. 동네 풍경은 변했지만 그 언덕길을 걷던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옛길에서 나를 태우고 남산타워에 올라가 서울의 야경을 즐기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마치 이제까지의 슬픔을 다 떨쳐버릴 수 있는 작은 권리라도 부여받은 듯 벅차고 뿌듯했다. 그날 밤은 눈부셨고, 내 마음은 조용히 환해졌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기에 드라이브를 나섰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 말 없이, 그저 나를 안아주던 그날 밤의 기억은 이후로도 삶이 버거울 때마다 조용히 꺼내어 마음에 풀어놓는 한 첩의 따뜻한 보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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