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아래

수필 -독일 보훔/ 광산박물관/ 영화 -국제시장/파독광부' 덕수'

by 김숙진

독일 최대 공업도시가 몰려있는 루르(Ruhr) 지역, 1930년대 초, 그 한복판인 보훔(Bochum)에는 '광산박물관'이 세워졌다. 이 박물관의 뿌리는 도르트문트에 있던 광업 관련 소장품과 자료에서 시작되었다. 도르트문트에서 모인 자료들이 보훔으로 옮겨져 새 건물 속에 전시되자, 이곳은 곧 루르 지역의 산업과 광업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보훔은 여전히 석탄과 광업으로 활기찬 도시였기에 폐광 이전의 활발한 산업 풍경 속에서 박물관이 자리 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여러 차례, 몇 년에 걸쳐 보수와 확장 공사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1930년대에 이미 이런 박물관이 세워졌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또한 연간 40만 명이 찾는다는 정보를 보고 방문은 했지만,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과 함께 전시를 관람하고, 단체관람객들이 몰려 門前成市를 이루고 있음이 인상적이었다.


박물관 건물 위로 거대한 ‘A’ 자 권양기가 우뚝 솟아 있어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하늘로 곧게 뻗은 강철 골조만 보아도 산업 시대의 힘과 장엄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권양기의 가장 높은 부분은 전망대로 개조되어, 그곳에 오르면 광활하면서도 아름다운 도시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고 했다.


박물관 해설자의 설명을 들은 뒤, 갱승강 시뮬레이터 체험에 참여했다. 이 체험은 실제 광부들의 승강 과정을 재현한 것으로, 관람용 갱도는 지면으로부터 약 20m 깊이에 위치하지만 시뮬레이터는 음향·진동·바람·온도 효과를 정밀하게 결합해 마치 1,200m 지하로 내려가는 듯한 감각을 제공했다. 단순한 스릴 연출이 아니라, 과거 탄광에서의 출퇴근과 작업 환경을 몸으로 이해하도록 설계된 교육적 시스템으로, 실제 복원된 갱도 전시와 함께 탄광 노동의 역사를 한층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탄광들이 겹쳐 보이며, 어둠 속에서 묵묵히 일하던 광부들의 고단한 삶이 떠올랐다. 그 기억 위로 머나먼 이곳 보훔갱도에서 나라의 외화를 벌기 위해 땀과 눈물을 흘렸을 그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 가슴이 저릿해졌다. 그러자 ‘덕수’가 나타나 '괜찮아'하며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2014년에 개봉된 '국제시장'가족을 위해 평생을 바친 한 남자의 희생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 '덕수'서독 파견 광부로 지하 깊은 갱도에서 철광을 캐며 땀과 먼지 속에 하루하루를 견딘다. 그는 번 돈을 모두 고향으로 송금하며 오직 가족만을 위해 살아간다. 갱도 붕괴 사고로 동료를 구한 뒤로 트라우마와 두려움이 남았고, 수년간의 노동 끝에 몸은 망가졌지만 '덕수'는 담담히 말한다. “그래, 가족이 잘 먹고 잘 살면 됐지.”


서독 파견 광부들은 단순한 해외 노동자가 아니라, 전쟁 이후 빈곤한 대한민국일으켜 세운 숨은 영웅들이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보낸 외화로 국가는 경제개발 자금을 확보했고, 후에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성장을 가능하게 한 밑거름이 되었다.

권양기 전망대에 올라 햇살 아래 반짝이는 보훔의 도시와 멀리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니 이곳이 옛 시절의 땀과 헌신을 되새기며 감사함을 품게 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이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독일은 이처럼 고된 산업의 흔적마저 소중히 품어, 그것을 새롭게 배우는 역사의 공간으로 되살려 놓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그들의 깊은 성찰과 실천이 새삼 부러웠다.


우리나라의 태백, 사북, 도계 같은 옛 탄광 마을들도 비록 이곳처럼 규모 있는 재생은 아니지만, 그 시절의 땀과 삶의 적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적·문화적 관광지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 깊은 갱도는 전시관이 되어 사람들을 맞이하고, 한때 어둠으로 가득했던 그 길은 이제 빛의 통로가 되어 지난 세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한다.

은 한 시대를 떠받친 노동의 온기이자,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조용한 유산이다. 그 빛을 이어 걷는 일은 과거를 기리는 마음에서 시작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약속으로 이어지는 길일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던 그들의 삶처럼, 우리 또한 그 빛을 품고 흔들림 없는 발걸음으로 내일을 밝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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