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외상 후 성장/살인상생
요즘 나는 새벽의 정적을 지키는 파수꾼이 된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차가운 얼음 위로 대한민국 선수들이 내뿜는 뜨거운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스포츠 문외한에 가깝다. 학창 시절의 수영도, 중년의 골프도 늘 결정적인 순간에 엉망이 되고 마는 지독한 '몸치'인 탓이다.
그런 내가 8시간의 시차를 거슬러 새벽까지 그들을 지켜보는 건 단순한 애국심을 넘어선 어떤 '경외감' 때문이다. 메달 여부는 결과만 확인해도 충분할 일이다. 그럼에도 굳이 생중계의 긴장감을 놓지 못하는 건, 그들이 마르고 닳도록 반복했을 수만 번의 훈련과 그 끝에 마주할 '찰나의 진실'을 함께 목격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경기장의 공기는 때로 잔인할 만큼 차갑다. 어제는 한 외국 선수가 찰나의 실수로 의식을 잃고 들것에 실려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 승리를 향해 질주하던 뜨거운 에너지가 한순간에 정적 속으로 가라앉는 참담한 광경 앞에서 나는 숨을 멈췄다.
그 장면은 이내 우리네 삶의 모습으로 겹쳐졌다. 우리의 삶 또한 저마다의 경기장 위에 놓여 있다. 그곳은 매끄러운 빙판일 수도, 거친 트랙이나 높은 평균대 위일 수도 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정점을 꿈꾸는 마음의 무게는 모두에게 평등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결승선을 눈앞에 둔 '막판'의 순간, 예기치 못한 사고로 모든 노력이 무너져 내리는 그 막막함은 남의 일 같지 않다. 몸의 통증보다 깊게 파고드는 영혼의 참담함. 삶이 우리를 배신하는 그 아픔의 강도가 저마다의 인생에서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내 안의 어느 한 구석도 함께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이 경외감 어린 통증의 실체는 내가 유일하게 자신 있었던 '노래'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 대학 시절 호기롭게 도전했던 '강변가요제'에서의 탈락, 십여 년 전 큰맘 먹고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마이크 사고로 한 소절도 부르지 못한 채 내려와야 했던 그 지독한 수치심. 당시의 좌절은 병이 되어 몇 년간 내 안의 노랫소리를 앗아갔다. 그러다 세월이 약이라고 나름의 노력 끝에 겨우 회복되는 듯했으나 재작년 '한국산문' 송년회 무대에서 가사 한 소절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며 트라우마가 재발하고 말았다
그날 이후 나는 아직도 당시의 영상을 차마 돌려보지 못한다. 즐겁게 흥얼거리던 콧노래조차 잃어버린 채, 여전히 자괴감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내가 프로 가수가 아니니 실수 좀 할 수 있지 않냐고 수백 번 다독여보지만 가장 잘하고 싶었던 클라이맥스에서 무너져 내린 그 허망함은 도무지 무뎌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참담함의 무게만큼, 내가 버텨온 시간의 가치를 오롯이 인정해주고 싶다. 화면 속 어린 선수들은 눈물을 훔치면서도 이내 웃는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서 '더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전한다. 역시 프로는 프로다. 그 의연한 태도를 지켜보며 번번이 결정적인 문턱에서 미끄러졌던 나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자괴감에 침잠해 있던 내 모습이 못내 부끄러워진다.
미끄러졌다고 해서 그간 쏟은 땀방울이 증발하는 것은 아니며, 생의 몇 차례 실수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 선수들이 넘어진 빙판을 박차고 일어나 다시 거대한 생의 지평을 향해 미끄러져 가듯, 나 역시 내 안의 '가혹한 자책'을 이제 그만 놓아주려 한다.
생의 결정적인 순간을 실수로 채우면 또 어떤가. 다시 일어서는 그 뒷모습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경이로운 존재들이다. 오늘 밤도 나는 빙판 위를 질주하는 그들을 위해, 그리고 가장 간절한 순간이 야속한 운명에 가로막혀 고개를 떨궈야 했던 나를 위해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우리의 남은 무대는 여전히 찬란하며 다음번엔 반드시 우리만의 완벽한 클라이맥스를 멋지게 장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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