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이슬아 장편소설/ 아마도 책방/ 이야기 장수/ 독서'인프라'구축
이슬아의 『가녀장 시대』는 내게 혁명적인 선언이라기보다, 오래전부터 머릿속으로 그려온 지극히 당연한 풍경의 기록이었다. 경제력을 갖춘 이가 가장이 되고, '부모'가 아닌 '모부(母父)'라 부르며 가사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설정은 내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관습이라는 이름 아래 묻혀 있던 합리적인 질서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듯한 해방감을 주었다.
작가는 '모부'라는 호칭을 통해 성별에 따른 언어적 우선순위를 뒤집고, 엄마와 아빠를 수직적 관계가 아닌 동등한 '노동 파트너'로 대우한다. 나 역시 가족 안의 희생은 '사랑'이 아닌 '노동'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어왔기에, 작가의 시선은 나의 가치관과 온전히 맞닿아 있었다. 효도를 비즈니스로 치환하고 서로의 선을 지키는 모습은 차가운 계산이 아니라, 서로를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예우하는 가장 현대적인 방식이다.
이 책은 특별한 교훈을 주기보다 내가 추구해 온 '나다운 가족 문법'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가부장제의 낡은 틀을 벗어나 각자가 기여한 만큼 존중받는 시대. 『가녀장 시대』는 특별한 선언이라기보다, 내가 추구해 온 합리적인 가족의 모습이 현실로 구현된 풍경과 같았다.
나는 '가녀장'으로서의 슬아도 멋지지만, 1인 출판사 '헤엄'의 대표로서 분투하는 그녀에게 더 우렁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요즘은 도처에 가족 사업이 즐비하다. '장수하려면 결국 가족 사업이 답'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서로의 속사정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뭉치는 것이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녀장이 이끄는 이 출판사는 누구보다 단단하게 롱런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우리 사회는 '책 안 읽기' 경연대회라도 열린 것 같다. 최근 독서 챌린지에 참여하며 '쓰겠다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정작 읽겠다는 사람은 메말라간다'는 고민을 접하고 무릎을 탁 쳤다. 스마트폰이라는 블랙홀에 빠져 공공장소에서 책 읽는 뒷모습을 찾기란 이제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든 미션이 되었다.
이런 척박한 토양 위에 1인 출판사의 깃발을 꽂고, 쉼 없이 마감을 치며 동네 서점을 살리자고 외치는 이슬아 대표의 노력은 눈물겹도록 소중하고 고맙다. 글 잘 쓰는 이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니 그 내공은 결국 '기하급수적인 다독'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존경받고 싶으면 남부터 존경해야 하듯이, 타인의 작품을 귀하게 여기고 정성껏 읽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나 역시 독서에 만큼은 결코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밤하늘의 은하수가 저마다의 빛깔로 반짝이듯,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작품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작품을 정성껏 음미하고 마음을 다해 응원을 보낼 줄 아는 독서 클럽을 꿈꿔본다. 우리의 작은 연대가 모여 동네 서점의 꺼져가는 불빛을 든든하게 지켜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가부장도, 가모장도 아닌 유쾌하고 당당한 '가녀장' 슬아의 등장은 반갑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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