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 무당

수필 -신들린연예/무속신앙/상실감/치유의 과정/결정론적 운명 /자유의지

by 김숙진


어린 시절, 나는 신(神)과 인간이 조우하는 기묘한 풍경을 자주 접하며 자랐다. 담벼락을 타고 넘는 날카로운 징 소리는 이내 '당집' 안의 공기를 서늘한 긴장감으로 채우곤 했다. '화주'가 서슬 퍼런 칼날을 정성껏 갈고닦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터라, 그 시퍼런 작두 위에 맨발로 올라 방울을 흔드는 ‘수양엄마’의 발바닥이 멀쩡하다는 사실은 어린 내게 경이 그 자체였다.


사실 나의 어머니는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 왜 무당을 찾느냐"며 무속을 지독히도 혐오하던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삶에 ‘무당’이 침입한 것은 큰오빠의 죽음 때문이었다. 생전 처음 본 여자가 어머니를 향해 "큰 불행이 닥칠 것"이라며 무심한 예언을 던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큰오빠의 전사 통지서가 월남의 포화 속에서 날아들었다. 일곱 살에 낚시를 갔다 실종된 작은아들에 이어 큰아들까지 앞세운 여인에게, 삶은 더 이상 이성의 영역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피눈물을 흘리며 그 무당을 수소문해 찾아갔고, 그렇게 인연이 닿은 이가 바로 우리 형제들의 '수양엄마'였다.

기절을 밥 먹듯 하며 무너져 내리던 어머니에게, 작두 위에서 포효하는 무당의 목소리는 차라리 생생한 구원이었다. 어머니는 자나 깨나 하나 남은 아들의 목숨만큼은 지켜달라며 절규하듯 매달렸다. 수양엄마는 시시때때로 굿을 벌였는데, 일 년에 몇 번은 대규모의 큰 굿을 올렸다. 여러 명의 무당이 각자의 굿거리를 맡아 아침 일찍 시작한 굿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 하나 달고 나오지 왜 그냥 나왔냐~~. 차 조심하고 물 조심해~~. 다 도와준다, 도와줘~~~."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 그녀가 내뱉던 그 공수(神託)는 어린 내게 거부할 수 없는 두려움이자 의지처였다. 확인된 바는 없으나, 당시 육영수 여사의 진오기굿에 초빙될 만큼 이름을 날렸던 그녀는 우리 집의 불행을 막아주는 신적인 존재였다. 나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슬픔이 어떻게 신의 목소리로 치환되는지를 목격하며, 그 기묘한 경계 위에서 성장했다.


SBS <신들린 연애>를 필두로, 카이스트 출신과 미대 출신 등 이색 이력의 점술가들이 맞붙는 <운명전쟁>이나 실제 사례자들의 기묘한 현상을 추적하는 티빙의 <샤먼: 귀신 들린 사람들>까지, 이른바 '샤머니즘 예능'이 안방극장을 점령했다. 대중은 연애 리얼리티와 다큐멘터리라는 서로 다른 형식을 넘나드는 이들을 ‘K-무당’이라는 도발적인 별칭으로 한데 묶어 부르며 열광하지만,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는 힘을 다루는 문법은 엄격히 나뉜다.


이곳에서는 미래를 엿보는 서로 다른 층위의 시선들이 충돌하고 화합한다. 신령의 목소리를 몸으로 받아내는 무속인의 '직관', 카드의 상징을 통해 무의식을 읽어내는 타로 전문가의 '영감' 사이에서, 역술가는 동양 철학의 근간인 주역의 원리를 도구 삼아 삶을 해석한다.

<신들린 연애>에서 타인의 과거를 꿰뚫던 이들이 정작 본인의 연애 향방 앞에서는 갈팡질팡하며 고뇌하는 모습은, 과거 당집 마당에서 울려 퍼지던 징 소리가 현대적인 비트로 변주된 듯한 묘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서바이벌 형식의 <운명전쟁>이나 치열한 기록의 <샤먼: 귀신 들린 사람들> 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바 역시, 역설적이게도 결정된 운명보다 강한 ‘인간의 자유의지’다.


신탁을 받는 무당도, 카드의 예언을 믿는 타로마스터도, 삶의 궤적을 짚어내는 역술가조차 결국 ‘운명적 상대’라는 정답 대신 가슴이 시키는 오답을 선택하려 애쓴다. 이들은 굿판의 서슬 퍼런 칼날 위가 아니라, 누군가를 향한 떨리는 마음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경계 위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다시 써 내려가고 있다.

아무리 비범한 도구를 가졌을지언정 사랑 앞에 설레고 질투하는 그들의 모습은, 삶이란 미리 쓰인 각본을 읽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빈칸을 채워가는 과정임을 증명해 낸다. 결국 이 열풍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운명의 굴레를 자기 손으로 거스르고 싶어 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이 투영된 거울인 셈이다.

이십여 년 가까이 이어온 명리학과 현대심리학 공부는 내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명(命)이 나에게 부여받은 계절을 읽어내는 이성의 학문이라면, 주역은 찰나의 길흉을 묻는 점(占)의 영역이다. 내 삶의 형세를 스스로 고찰하게 된 이후,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占도 보지 않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진오기굿을 해드렸으나, 정작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하지 않았다. 무당의 신기나 점사를 불신해서가 아니다. 그들 또한 신의 도구이기 이전에, 자기 삶의 허기를 채우고 생의 무게를 감내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생활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의 날카로운 예언보다, 그들이 흘리는 인간적인 눈물 한 방울이 더 큰 울림을 주는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의 기묘한 인생을 헤쳐 나가는 고독한 동반자인 까닭이다.


더 중요한 건, 인간의 사사로운 욕망이 신의 뜻인 양 포장되는 것을 경계하며, 나의 악행과 실수까지 온전히 내 이름으로 책임지는 인간이고 싶어서다. 가족들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 내게, 모든 기복(祈福)은 인간의 나약함이 빚어낸 가장 뜨거운 생의 몸부림에 불과했다. 이제 나는 신의 목소리에 기대어 운명을 묻는 대신, 내가 발을 딛고 선 현실의 무게를 기꺼이 감내하며 살아가려 한다.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은 결국 스스로를 책임지고 사랑하려는 그 뜨거운 의지뿐일 테니 말이다.


화려한 조명 아래 변주되는 'K-무당'의 열풍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운명이라는 거대한 슬픔을 묵묵히 견뎌내고, 克己하는 우리네 평범한 발걸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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