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지망생과 예비 의사

명리학+현대심리학 = 심리컨설팅/기세와 통로/동기와 방어기제/의대진학

by 김숙진


명리학의 문턱에서 사람의 생년월일을 마주하다 보면, 닮은 듯 전혀 다른 두 개의 인생 궤적을 목격하곤 한다. 지지(地支)에 ‘土'라는 흙의 기운을 가득 품고서 똑같이 ‘의사’라는 정점에 서고자 하는 두 학생, ‘의사지망생’과 ‘예비의사’는 사주에 화생토(火生土)가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뜨거운 불(火)이 만물을 길러내는 흙(土)을 돕는 형상이니 재능이 넘치고 영특함이 빛나 그 기운이 밖으로 뿜어져 나올 때의 화려함은 가히 압도적이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사뭇 다른 온도를 필요로 한다. 겉으로 보기엔 다 같은 '영특함'일지 몰라도, 그 속을 채우는 알맹이는 사람마다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의사지망생’은 정축(丁丑) 일주다. 주변에는 차갑고 습한 흙들이 즐비하여 가뜩이나 가녀린 촛불의 열기를 사정없이 빨아들인다. 명리에서는 이를 ‘설기(洩氣)’라 부른다. 내 힘을 스스로 조절하여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의해 강제로 빼앗기는 형국이다. 일간의 뿌리인 ‘근(根)’이 없으니 불꽃은 흔들리고,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의대’라는 거창한 목표로 메우려 한다.

고교 재학 시절 늘 전교 1등, 못해봤자 2~3 등 했다. 처음부터 의사를 꿈꾼 것은 아니었으나, 현실적으로 접근해 의지를 불태우겠다는 다짐으로 의대 진학을 목표로 삼게 된 경우다. 나는 다양한 검사와 상담 후 약대와 간호대는 쉽게 갈 수 있어도 의대는 고생을 아주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의사지망생'과 부모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거푸 의대만 아닐 뿐 바이오 메디컬 분야의 일류대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대 진학만을 위해 현재 삼수 중이다.

현대 심리 관점에서 보면 이 학생은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져 있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멈추는 순간 자신의 과거가 ‘실패’로 확정될까 두려운 것이다. 의대 지망생이라는 틀에 자신을 가두는 ‘정체성 폐쇄’는 객관적인 확률보다 자신의 통제 환상을 믿게 만든다. 굳건한 의지보다는 자기를 잃지 않으려는 처절한 방어기제가 느껴진다.

‘의사지망생’은 병오(丙午)년이라는 생애 가장 뜨거운 운의 문턱에 서 있다. 평생 가져보지 못한 강력한 비겁의 기운이 들어오니, 이번만큼은 그 불꽃이 일시적으로 타오를 것이다. 그 온기가 아이의 지친 마음을 다독여 기적처럼 합격의 문을 열어줄 수도 있다. 다만 제자를 사랑하는 상담자로서 내가 바라는 것은 단순한 합격 그 너머에 있다. 이 뜨거운 운의 시간을 통해 아이가 자신의 그릇을 온전히 이해하고, 남의 시선이 아닌 나의 뿌리가 버틸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한편 ‘예비의사’는 병진(丙辰) 일주다. 오월(午月)의 태양으로 태어나 ‘양인(陽刃)’이라는 강력한 자가발전기를 가졌다. 엔진(일간)이 워낙 거대하니 밖에서 부는 비바람은 엔진을 식혀주는 냉각수가 되었고, 대운이 절실했던 방향으로 바뀌면서 넘치는 에너지를 쏟아낼 정당한 통로를 찾아간 셈이다. 암흑 같은 현실의 어려움을 호롱불 밑에서 칼을 갈며 견디다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나가보니 태양이 떠 있는데, 그 태양이 바로 본인인 셈이다. ‘난 의대 아니면 안 돼’라는 집착이 없었던 이 아이는 지원한 모든 대학에 합격했고, 그중 의대를 선택해 즐겁고 기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혼과 새엄마라는 시린 환경 속에서도 이 아이가 의대에 안착한 비결은 명확하다. 공부 외에는 일상생활조차 귀찮아하는 게으름뱅이지만, 가정불화에서 오는 분노와 불안을 공부라는 생산적인 활동으로 치환한 것이다. 부모와 환경,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 싸우는 게 귀찮아서 눈앞에 있는 공부에만 집중했음을 심리 검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고통을 ‘승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케이스다. 갈등에 에너지를 낭비하느니 차라리 공부를 안전한 도피처 삼아 지옥 같은 현실을 영원히 탈출하려는 강력한 ‘결핍 동기’가 작동한 결과다.


인생은 길고, 의사 면허보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 ‘의사지망생’이나 ‘예비의사’나 삶이 어떤 농도로 익어가든, 결국 각자의 명(命)이 허락한 가장 아름다운 풍경에 닿기를 바란다. 운명은 정해진 결말이 아니라, 내 안의 에너지를 가장 지혜롭게 써 내려가는 긴 기록과도 같은 것이기에.


카카오톡ID: for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