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농촌유학
화순으로 이사를 하고 남편이 집에 돌아가던 날이었다. 차에 시동을 거는 남편을 보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들은 꿋꿋하게 울지 않았다. 빨개진 눈을 옷소매로 훔치며 서러움에 한참 훌쩍였다.
한달에 한 번 오기로 한 남편이 내 생일을 맞아 2주 만에 방문했다. 창가에 서서 도착한 차에서 내리는 남편을 보고 눈물이 났다. 반갑고 기뻤다. 아들과 마당으로 뛰어나가 셋이 얼싸안고 한참을 있었다.
남편은 몇 달은 먹을 수 있는 고기와 간식 꾸러미를 들고 왔다. 회사에서 생각날 때마다 쟁여 둔 허브차, 우엉차, 옥수수 수염차, 그 외 갖가지 티백도 챙겨왔다. 아이를 따르는 동네 길고양이 간식까지 들고 온 남편의 등짝에서 천사의 날개가 보이는 듯했다.
저녁을 먹으며 ‘너무 좋다.’ ‘행복하다.’라는 말이 자꾸 나왔다. 남편이 가져온 캠핑용 난로를 트니 차갑던 실내가 금세 따뜻해졌다. 화순에 와서 온도 상으로도, 내 마음도 가장 따뜻한 밤을 보냈다.
한방에서 자고 일어난 다음 날. 가운데 누운 남편에게 아이와 함께 파고들었다. 옆에 누워보니 남편이 더 잘생겨 보였다. 시내 구경을 다녀와서 남편은 이것저것 집안을 손보았다. 하루가 금세 지났다.
두 밤을 자고 남편이 돌아가는 날이다. 내 마음처럼 하늘에서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가방을 챙기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오늘은 절대 울지 않겠다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했다. 차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또 수도꼭지가 열렸다. 이번에는 정말 한 달 후에 온다는 남편. 4월 초에 차박 준비를 해서 만나기로 했다.
함께 지낼 때는 밉고 귀찮을 때도 많았다. 작년인가 다리를 다쳐 병가를 오래 쓰던 당시, 삼시 세끼 차리기 싫다고 아픈 사람에게 눈치 준 적도 있었다. 매일 유튜브만 보고 책 한자 안 읽는다고 구박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농촌 유학하며 얻은 첫 번째 배움은 가족의 소중함이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남편의 전화에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로켓 프레시 배송으로라도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다. 남편이 화순에 올 때마다 농담처럼 건네던 말. ‘나중에 꼭 보은할게.’
이 마음 잊지 않는다면 돌아가서도 화목하게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은(그리고 특히 내가) 망각의 동물이라 확신은 금물이다. 이 글을 남기는 이유이다. 시간이 흐른 후, 남편이고 뭐고 다 밉고 혼자가 되고 싶을 때 이 글을 다시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