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결과

by 김모씨

독서의 결과


책을 읽으면 인생을 잘살게 된다고 한다. 세상의 기준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가치관을 구축하며 인생을 살게 된단다. 책을 읽으면.

특히 고전을 읽으면 그렇다고 한다. 고전 속에 진정한 배움이 있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모든 배움과 깨달음은 ‘잘’살기 위한 방책이 된다.

어떤 이들은 책을 읽고 사회적 성공까지 거머쥔다. 독서법을 개발해 전문 강사가 된다든가 지식 소매상이 되거나 직접 책을 쓰며 유명해지는 이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독서로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이 있다. 책 읽는 환경을 만들어 양서를 제공해주고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책 읽는 재미에 빠진다. 그리고 책을 통해 키워나간 지성으로 좋은 학교에 진학한다.


오늘도 도서관에 가서 아이와 내가 읽을 책을 대출해왔다. 매일 저녁 자녀와 함께 독서 시간을 갖는다. 이렇게 책 읽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잘’살고 싶어서다. 나도. 아이도.

“책을 읽어야 해. 그럼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잘 살 수 있어.” 어쩐지 와닿지 않는 말이다. 읽던 책에서 눈을 떼고 생각에 잠긴다. ‘아이에게 그런 주장을 펼치는 나. 책을 읽어서 얼마나 인생을 잘살고 있나?’

그 물음에 대한 답은 회의적이다. 문득 몇 년 전 읽었던 단편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김애란의 단편 <서른>에 나온 구절이다. 학원 교사인 주인공은 자신의 제자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

이 순간 왜 이 말이 떠오르냔 말이다.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고 된 모습이 바로 나다. 그런데 결코 자랑스럽지 못하다. 직업도 없고 전문 지식도 없고 뭐라도 유용한 일을 하는 법이 없다. 듣고 한 번에 이해도 어려운 철학 강의는 열심이고 이런저런 책들에 관심만 넓혀간다. 이런 식으로 앞으로 열심히 읽어간다고 뭐 뾰족한 수도 없을 것 같다.


차라리 이제라도 부동산이나 주식 등 뭔가 유용한 것을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 서양 문학의 효시 <일리아스>를 읽는 것보다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서 어린이집 조리사로 취업하는 게 보다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돈이나 현실의 문제는 누군가에게 맡겨두고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나이만 먹어가는 자신이 무척 짐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묻는 아들에게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논하는 건 그만두기로 한다.

“독서를 해야 국어 실력을 키울 수 있어. 그래야 수능을 잘 볼 수 있단다. 그래야 ‘잘’ 사는 기회를 얻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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