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는 책, 10대 소녀들의 미묘한 심리를 날것으로 보여준 수작 <우리들>로 알려진 윤가은 감독의 산문 <호호호>를 읽다가 큰 웃음이 터졌다.
남들의 기대와 사뭇 다른 작가의 취향을 솔직하게 밝히던 부분이었다. 요즘 무엇에 빠져 지내냐는 주위의 물음에 <펜트하우스>와 <결혼작사 이혼작곡> 시청과 같은 ‘그런 취향’을 드러내자 주변에서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펜트하우스>는 그렇다해도, 무려 <결혼작사 이혼작곡>이라니. 윤가은 감독의 솔직함에 반하며 나의 ‘그런 취향’들이 떠올랐다.
넷플릭스에 ‘내가 시청한 영상’과 신기를 발휘해 나의 취향에 맞는 영상을 끊임없이 띄워주는 유튜브 알고리즘은 감추고 싶은 나의 모습이기도 한다. 수작으로 꼽히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나의 목록에 없다. 매주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프로그램은 오직 두 개. <금쪽같은 내 새끼>와 <나는 솔로>이다.
육아의 어려움을 겪는 부모를 전문가가 코칭하는 금쪽같은 내 새끼는 3년간 단 한 개의 에피소드를 빼고는 모두 섭렵했다. (단 한 개는, 어려움보다 훌륭함을 보여주는 홈스쿨링 가정편이였다. 너무 부러울까봐 손이 가지 않음)
육아 10년 차이지만 매주 소개되는 가정의 어려움 속에 모두 나와 아이의 모습이 있다. 아이가 미취학 연령 일 때는 주변의 모든 부모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후 학년이 올라갈수록 ‘육아’ 자체를 고민하는 주변에 보이지 않았다.
모두 어느 정도 육아를 마스터하고 학업이나 진로 등 다음 단계로 이행하는데 나 홀로 아직도 육아의 고충에 머물러 있었다. 어느 모임을 가도 나처럼 매주 <금쪽이>를 챙겨보고 공감하는 이는 없었다.
수요일 밤은 설렌다. <나는 솔로> 본방송이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방영 시간이 늦어 본방사수는 못 하지만 목요일 오전의 큰 즐거움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든다. 내 눈으로 결과를 확인하고자 인터넷 포털 접속을 피한 후, 주로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며 어제 방송을 본다.
첫인상과 각자의 직업과 배경이 어느 정도 파악되는 자기소개 이후 나타나는 남녀의 마음 변화를 지켜보는 게 매우 흥미롭다. 성별을 떠나 마음이 가는 출연자가 있으면 금상첨화. 가끔은 눈물을 흘릴 정도로 몰입을 하면서 본다.
나의 ‘짝짓기’ 프로그램 편애는 <나는 솔로> 제작진의 비운의 수작 <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신생아 육아로 삶이 피폐해질 때 우연히 보기 시작해서 지난 에피소드를 모두 몰아보고, 본거 또 보고,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글과 짤을 무한 반복해서 보던 나날들이 있었다.
출연자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으로 해당 프로가 갑작스럽게 종영되고 몇 년간 짝짓기 프로그램은 쳐다도 안 봤는데. (모든 짝짓기 포맷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짝’만 봤다.) 지난 해인가 같은 제작진이 <스트레인저>라는 프로그램의 성공에 힘입어 <나는 솔로>로 돌아왔고, 다시 애청자가 되었다.
이렇게 할 말 많고 짧지 않은 시간동안 간직해온 취향이건만,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여가에 주로 책을 읽거나 클래식 음악을 챙겨 들으려 한다는 남부끄러운 이야기만 해왔다. 물론 책도 읽고, 강의도 듣고 쇼팽도 듣는다. 하지만 한 편에 육아 관찰과 짝짓기 프로그램에 환장하는 내 모습이 있다.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그런 취향’. 누구에게나 이유를 모르게 떳떳하지 못한 그런 취향이 있겠지?
설마 당신은 아름다운 외연에 어울릴만한 훌륭한 책과 작품성 뛰어난 영상물만 보는 건 아니겠죠? 박물관과 미술관에 다니거나 커피콩을 볶아 풍미를 즐기고, 아름다운 요가복을 입고 필라테스 수업을 듣는 게 전부는 아니겠죠?
제발, 아니라고 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