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 돌보기

by 김모씨

외동이어서일까. 이맘때 아이들의 보편적인 욕구인걸까. 아이는 지난 몇 년간 애완동물을 키우자고 졸라댔다. 민영은 열 살이 되면 다시 생각해보자고 말하며 아이의 요구를 회피하곤 했다.

아이가 원하는 강아지나 고양이까지는 못 되어도 몇몇 생명체가 집을 거쳐 갔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달팽이나 사슴벌레를 받아오는 일이 있었고 민영은 그 작고 무해한 생명체에 질색 했다. 사슴벌레의 알이 성충이 되지 못해 안도했고, 수명이 다한 사슴벌레를 아이와 남편이 아파트 앞마당에 묻으러 간 사이 사육장과 남은 먹이를 얼른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렸다.


올해 초,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이제 열 살이야. 열 살 되면 강아지 키워도 된다고 했지?”

“엄마가 언제 허락했어. 이제 아빠랑 같이 의논해보자.”

민영에 말에 아이는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일에 대해 민영은 그제야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이 외동인 아이의 정서에 좋을 것 같기도 했다. 민영도 어린 시절 꽤 오랜 기간 몇 마리의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있었다. 강아지를 품에 안고 체온을 느낄 때, 촉촉한 코에 볼이 닿을 때, 고소한 발 냄새를 맡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고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자신을 반길 때 주는 즐거움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민영은 선뜻 동물을 집에 들일 수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애완동물에 들어가는 돈 때문이었다. 개나 고양이를 입양하는 비용부터 접종비, 미용비에 강아지가 나이를 들어가며 생기는 각종 병원비를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민영이 외동을 고집한 이유도 결국 경제적인 이유였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돈이 들었다. 민영의 남편은 지방 공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었고,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민영은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유치원 친구의 엄마들보다 씀씀이가 작고 알뜰했다. 가장 저렴한 분유를 먹였고 이유식에 한우만을 고집하지도 않았다. 집에서 먹는 게 가장 편하다며 외식보다 집안에서 삼겹살을 굽는 불편을 감수하곤 했다. 물론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아이를 키즈 전용 수영장과 어학원에 보내기 위해, 호텔이나 고급 리조트 대신 차선책으로 가성비를 앞세우는 캠핑을 가기위해서 둘째를 갖지 않았던 그녀는 개나 고양이와 생활비를 나눠 쓸 생각이 없었다.


아이는 그동안 모은 용돈 11 만원을 들고 민영과 남편에게 제발 동물을 사달라고 호소했다. 개나 고양이가 안 되면 거북이나 물고기라도 키우겠다며 포기하지 않았다.

“거북이 정도는 키울 수 있지 않을까?”

남편이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민영만이 고집을 부리는 형국이였다. 마트에서 팔던 거북이의 가격대가 얼마였더라 떠올려보며 결국에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의 파충류 샵을 검색해 세 식구가 찾아갔다. 파충류라니. 입구부터 민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난 여기 있을 테니 둘이 들어가서 알아보고 나와.”

잠시 후 남편이 입구에서 민영을 부른다.

“민영아, 하나도 안 징그러워. 들어와 봐.”

매장이 즐비한 상가 복도에서 혼자 서있기 민망했던 민영은 마지못해 매장에 들어섰다. 아이와 남편이 보고 있는 것은 마트에서 팔던 거북이 아니었다. 직원은 요즘은 물거북보다 관리가 편한 육지 거북을 선호한다며, 육지 거북 사육의 장점을 열거했다. 아이는 벌써 육지 거북에 푹 빠져있었다.

“가격은 어떻게 되요?” 설명은 들을 만큼 들었다고 생각한 민영이 물었다.

“한 마리에 16 만원이구요. 사육장은 12 만원이예요.”

마트에서 파는 2~3 만원대 거북이보다 가격대가 높았다. 일단 생각을 해보자는 민영과 오늘 거북이를 데려가겠다는 아이가 대치했다. 남편은 구매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 같았다. 두 마리를 30 만원에 주겠다고 점원이 선심 쓰듯 말했다.


사육장은 아이 방 벽 한쪽 면을 거의 다 차지할 만큼 크기가 컸다. 아이는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거북이부터 살펴보았다. 애정을 담아 거북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약속한 대로 먹이를 챙기고 배설물을 치우는 아이를 보며 민영은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사육을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나고 거북이를 돌보는 일은 민영의 차지가 되었다. 그녀는 밤새 거북이 두 마리의 안녕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이가 해야 할 숙제를 미루거나 고집을 부릴 때 그녀는 사육장 앞으로 도피해 한쪽 뺨을 바닥에 대고 누워 한참 동안 거북이를 바라보았다. 거북이 이전에 달팽이, 사슴벌레가 그랬듯이 돌봄은 아이의 몫이 아니었다.

민영은 다시는 그 어떤 동물도 집에 들이지 않겠다 마음먹었다.


매일 아이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남편은 퇴근 후나 주말, 집에 머무는 동안 주로 TV나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곤 했다. 언제부터인지 아이가 남편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모든 영상을 함께 시청했다.

열 살이 된 아이는 엄마의 말이라면 인상부터 쓰고 봤다. 민영은 이 상황을 벗어날 무언가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어느 날, 학교 소식을 받아보는 애플리케이션에서 ‘농촌 유학’ 모집 공고가 그녀의 눈에 띄었다. 도시 아이들이 학생 수가 적어 폐교 위기에 처한 농어촌 지역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고 가족이 함께 해당 지역에 체류하면, 교육청에서 유학비 일부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작은 학교에서만 가능한 다양한 체험과 자연과 함께 하는 생태교육에 학급당 인원이 적은 점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학원을 오가는 시간에 비용도 절약하고, 영상을 틀어주는 남편이 곁에 없으면 독서에 더욱 집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컸다. 민영은 남편과 아이를 설득해 프로그램 접수를 마쳤다.


그녀와 아이는 집에서 5시간 거리의 조용한 시골 한옥 마을에 입주했다. 아이는 도착하자마자 마을 입구에 자주 모습을 보이는 고양이 세 마리에 푹 빠졌다. 고양이들은 사람을 경계하기는커녕 처음 보는 민영과 아이가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자 그들의 다리 사이로 몸을 스치다 바닥에 누워 애교를 부렸다. 아이는 매일 하교 후 고양이들을 보러 다녔다.

어느 날 인가, 고양이 한 마리가 아이를 따라 집 마당에 들어섰다. 아이의 요구에 냉장고에서 소시지를 꺼내 잘게 찢어 주었다. 소시지 한 개를 다 먹은 고양이는 마당에서 아이와 한참을 놀았다.

다음날부터 하교하는 아이 옆에 고양이가 늘 함께했다. 소시지 한 팩을 다 주고 고양이 사료를 주문했다. 밥그릇과 물그릇도 마련했다. 고양이는 아침부터 민영의 한옥을 찾아와 밥그릇을 채워줄 때까지 소리를 냈다. 외출하고 돌아오는 민영을 알아보곤 그녀보다 먼저 마당에 들어섰다. 하교하는 아이를 따라 저녁까지, 고양이는 하루 세 번 꼬박꼬박 찾아왔고 민영은 고양이의 삼시세끼를 챙기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민영의 집을 찾는 고양이의 수가 늘었다. 마을에서 자주 보던 다른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처음 본 고양이들이 마당에 나타나거나 대문에 앉아 거실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네다섯 마리의 고양이에게 모두 이름을 붙여주고 나타날 때마다 민영을 불렀다.

“엄마, 00이 왔어. 먹이랑 물 줘!”

몇 번인가 스스로 먹이를 준 적도 있지만 아이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엄마가 먹이 그릇을 채워주기를 기다렸다.

“우리 집이 고양이 맛집으로 소문났나 보네.”

자조 섞인 말투로 민영이 말했다.


민영이 입주한 집은 두 채의 한옥이 한 대문 안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채는 민영과 아이가 월세를 내고 입주해있고, 나머지 한 채는 집주인이 거주했다. 인근의 도시에 거주하는 집주인은 주말에만 머물렀다.

조용한 주말 오전 한옥 마을 입구에서 싸움이 났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밖을 내다본 민영은 일방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집주인의 모습을 목격한다. 평소 점잖고 조용하던 집주인은 앞에선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정확히 어떤 말이 오가는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집주인 부부와 눈이 마주칠 새라 서둘러 창문을 닫은 그녀는 무슨 예감에서인지 조용히 마당에 나가 고양이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집안에 들여놓았다.

지난 주말 마당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고양이와 그 옆에 있던 아이를 보고 “몇 마리나 먹으러 오냐”고 묻던 집주인의 말투에는 길고양이를 챙기는 아이에 대한 기특함 같은 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주인집을 포함한 이웃 한옥에서도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민영은 자신이 길고양이를 한옥 마을에 끌어들이는 외부인이며, 마을 사람들이 이에 대해 반감을 느끼고 있음을 직감했다.

어쩌면 이 기회에 분란의 소지를 없애는 동시에 고양이 밥 챙기기도 그만둘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민영은 조용히 아이를 불렀다.

“시온아. 밖에 싸우는 소리 들려?”

아이가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집주인 아저씨 화났어. 지금 고양이 때문에 싸우는 거야. 길고양이들이 자주 찾아와서 마을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 같아.”

“어떡해, 엄마?”

민영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게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는 잠시 집을 빌려서 사는 거야. 마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면 안 돼. 이제부터 고양이들이 못 찾아오게 할 거야.”

때마침, 하루 세 번 찾아와 밥그릇이 채워질 때까지 소리를 내는 고양이가 거실 창에 비쳤다. 아이는 눈이 동그래져 민영을 바라본다.

“엄마가 쫓아낼 테니까 나오지 마. 알았지?”

민영은 아이가 따라 나올새라 서둘러 문을 닫고 마당으로 나선다. 고양이는 평소처럼 그녀의 모습을 보자 어서 먹이를 달라고 더 크게 울어대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툇마루 한쪽 구석에 세워 둔 싸리비를 손에 쥐었다. 매일 마당에서 밥을 먹고 아이와 놀고 가는 고양이는 조금도 의심하는 기색이 없다. 민영은 고양이가 눈치를 채고 도망이라도 갈까 싶어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빗자루로 고양이를 힘껏 내리쳤다.

“가! 다시는 오지 마!”

고양이는 빗자루에 얻어맞고 날쌔게 도망가더니 마당을 다 벗어나지도 않고 돌아서 그녀를 바라보고 자리에 머물러 야옹거렸다.

“응. 그래. 레오야.”

다정한 목소리로 안심시키며 다가가 다시 빗자루를 휘두르며 고양이가 담벼락을 타고 마당을 벗어날 때까지 쫓아내고서야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집안에서 모든 상황을 소리로 파악하고 원망하듯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레오 때렸지?”

“응. 다시 오지 말라고 빗자루로 혼을 내줬어. 이제 고양이 밥 안 주는 거야. 알겠지?”

서운해하는 아이의 표정을 뒤로 하고 민영은 밥그릇과 물그릇을 다용도실 재활용 봉투에 던져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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