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유학 일기

그렇게 아이의 영구치를 잃었다

by 김모씨

담임에게 전화가 왔다. 한창 수업을 하고 있을 시간 핸드폰에 뜬 수신자를 확인하고 곧바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00이가 놀이를 하다가 넘어지면서 앞니가 깨졌어요, 어머님. 빨리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영구치가 반 이상 깨져나갔다는 말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점심을 먹고 장을 보려고 동네 언니와 나선 길이었다. 급히 차를 돌려 학교에 도착했다.

언제나 평화로운 시골 학교의 교정. 체육 수업 중이던 아이들이 허둥지둥 달려오는 나에게 말을 건넨다.

“00이 돌봄교실에 있어요.”

교실에 얼음팩을 손에 쥔 아이가 우두커니 앉아 있다. 나를 본 교사가 아이의 이가 담긴 우유 팩을 건넨다.

“빨리 큰 병원에 가보세요.” 교사가 알려준 병원은 인근 도시에 있는 대학 병원이다. 옆에선 다른 교사가 말을 보탠다.

“그 병원은 당일 진료가 어려울 텐데.”


차가 없어 동네 언니의 차를 얻어 타는 데다 둘 다 농촌 유학 중이라 옆 도시에 가본 적이 없다. 아이를 태워 급한 대로 읍내로 향했다. 앞니만 반 잘려 나갔을 뿐 아이는 너무나 멀쩡하다. 입술이 터지지도 얼굴이 붓지도 않았다.

읍내 치과에서 아이를 본 의사가 말한다.

“많이 잘려 나가서 신경치료도 해야 하고, 옆 이도 흔들려서 고정을 해야 합니다. 어린이 치과에 가서 치료하세요.”

진료실을 떠나는 의사를 보고 당황한 내가 물었다.

“여기서는 아무 치료도 안 해주는 건가요?”

의사는 방금한 말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치과를 나서 옆 도시의 어린이 치과를 검색해 전화를 건다. 당일 진료가 어렵다는 말에 다음날로 예약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동네 언니 차의 타에 올라탔다. 손에는 잘려 나간 이 조각이 담긴 200ml 우유 팩을 든 채였다.

평소 보다 일찍 집에 돌아온 아이는 태블릿 PC를 키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우유 팩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그제야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눈물이 났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 한채 집으로 돌아온 나의 무능력이 속상했다. 여럿이 놀면서 혼자 다쳐서 돌아온 아이가, 늘 조심성이 없던 아이가 원망스러웠다. 그런 마음이 드는 자신이 미워져 또 눈물이 났다.

통화를 끊고 다시 울린 전화. 남편이었다. 지금 회사를 나서서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남편의 말에 고마움과 미안함이 몰려왔다. 또 눈물이 났다.


그렇게 혼자 훌쩍이는데 동네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부모와 떨어져 유학 중인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사감 선생님이 옆 도시에서 진료 가능한 치과를 찾았다고, 직접 운전해 바래다 주신다고 했다.

아이와 이가 담긴 우유 팩을 냉장고에서 꺼내 들고 사감 선생님 차를 탔다. 꼬불꼬불 산길에서 속도를 높이시고 2차선 도로에서 앞길을 막고 있는 차들을 연달아 제치며 열심히 달려 병원에 도착했다.

사고시간을 묻는 간호사가 말했다.

“왜 이제 오셨어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이를 붙이는 일은 불가능했다. 아이는 임시 치아를 끼고 지내다 언젠가는 임플란트 시술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아이의 영구치를 잃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감 선생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위로를 받았고 괜찮다, 별거 아니다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속상했다. 밤늦게 4시간을 달려 도착한 남편을 보고 또다시 많이 울었다.

누구도 탓할 수 없어 자신을 탓했다. 내가 조금 더 잘 대처했더라면. 응급차라도 불러서 병원에 제때에 도착했더라면, 학교에 항의를 해서 누군가 아이를 데려다 주었더라면 이를 붙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속상한 밤을 보냈다.


아이는 임시 치아를 끼고 잘 지낸다. 아프지 않다고 음식을 먹는 데 불편함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아프던 마음도 무뎌진다.


누구 탓도 아니야. 그리고 절대, 내 탓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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