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은 지 중간쯤 지나서부터 서글퍼지더니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어느 시점에서 왜 울었는지 모르게 그냥 슬퍼졌다. 이 책의 무엇이 나를 울렸을까? 글을 쓰며 내 마음을 이해해 보려 한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아버지는 성공한 변호사이며 형은 이제는 널리 알려진 (홀든의 표현에 따르면 변절한) 작가이다. 그는 명문 학교에서 쫓겨난 처지이다.
퇴학을 앞두고 그는 독감에 걸린 스펜서 선생을 찾아 일장 연설을 듣는다. 기숙사에 돌아와서도 친구 몇 명을 만나지만 누구와도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지는 못한다. 학교를 떠난 후에도 홀든은 계속해서 누군가를 만나려 시도한다. 성금을 모으던 수녀들, 샐리, 매춘부, 콜럼버스에 다니는 칼 루스와 앤톨리니 선생까지.
학교를 떠나 펜 역에 도착한 홀든이 공중전화를 찾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홀든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싶은데 상대가 떠오르지 않은 채 전화박스에서 20분을 보낸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빨간 사냥 모자를 쓰고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주인공이 괴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읽으면서 누군가를 만나려는 주인공의 끊임없는 시도가 눈에 띄었다.
그의 말처럼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가기에 누구도 홀든의 기억 속의 모습이 아니다. 홀든은 박물관의 전시물처럼, 늘 같은 노래만 나오는 회전 목마처럼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꿈꾼다. 하지만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잊어야 할 때도 있고 주변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켜야만 한다.
세상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앨리 형의 죽음, 끝까지 자기 말을 취소하지 않고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몸집이 작고 연약했던 제임스 캐슬을 너무 오래 기억하면 안 된다.
홀든은 마지막으로 찾은 여동생 피비에게 자신의 바람을 말한다. 호밀밭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절벽에 떨어지지 않게 지켜주는 일. ‘바보 같지만’ 그게 진짜 그가 하고 싶은 일이다.
여동생에게 크리스마스 공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진심으로 알아주고 아이들이 볼 새라 <이런, 씹할>이라는 낙서를 지우는 홀든은 과연 누구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까?
나도 가끔 어른보다 아이가 편하다. 전혀 반갑지도 않은 사람에게 <정말, 반가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세계. 잘난 사람 경연 대회 같은 ‘어른들의 세계’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버거울 때가 있다. 그래서 울었나보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의 가방이 자신의 것 보다 낡아 있는 것을 신경 쓰는 사람. 그 사람이 그리워질까봐 누군가와 말하는 게 걱정되는 사람. 홀든 콜필드가 너무 외로울 것 같아 걱정이 되어서, 그래서 울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