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요즘 20대가 200을 벌면 200을 쓴다는 인터넷 게시글을 읽었다. 영끌족과 비트코인 투자에 이어 각종 명품과 오마카세, 호캉스 등 하고 싶은 건 다하고(다쓰고) 사는 주변 지인들을 제보하는 댓글이 몇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고 있었다. 부모의 부에 기댈 수 있어 버는 돈은 모두 용돈으로 쓰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글들도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이 현상에 대한 원인을 찾는 댓글이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역병과 기후 위기를 겪으며 ‘미래가 없을 수 있다’라는 결론을 내린 이들은 현재만 즐기면서 산다는 거다.
코로나 시국은 유례가 없는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나이와 사회적 위치와 같은 각자가 가진 배경에 따라 ‘코로나 역병’은 다양한 모습으로 삶에 영향을 주었을 테다.
30대, 초등학교 아이를 둔 전업주부로서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은 학교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수능이 미뤄지고 학습 격차가 벌어진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은 많은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자영업자들은 줄어든 매출에 속수무책이었고 직장을 잃은 많은 이들을 흡수한 배달업계는 코로나 시국에 호황을 맞았다.
노인이나 장애인 돌봄 시설이나 인력 부족으로 혹독한 2년을 보낸 이들도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상상력이 미친 범위이다.
그런데 20대들은 코로나 시국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을까? 한 번도 관심을 가진 적 없는 문제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200을 벌어 150을 저축하거나 200을 모두 소비하는 20대 모두 만나본 적이 없다. 아니, 20대와 사적인 대화를 나누어 볼 일이 없다.
30대, 40대의 모습이 다양하듯이 그들도 각자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주식이나 비트코인으로 투자한 돈을 잃고, 남들이 돈을 잃는 와중에 운이 좋아 수익을 올려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이들도 존재할 것이다.
차곡차곡 수입의 일정 부분을 저축과 보험에 넣으며 미래를 대비하는 전통적인(?) 유형도, 지구 종말론 쪽에 힘을 싣고 버는 데로 다 써버리는 이들도 있을 테다.
미래는 대비하는 자의 것이라는 믿음 아래 보험과 각종 교육비, 노후 자금 등으로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쪼개 저축을 하다가 현타가 오는 순간이 있다. 이렇게 개미처럼 살다가 늙은 개미가 되겠지. 그때도 나는 소비를 줄이고 그저 큰 우환 없이 먹고 사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으려나.
역병과 지구 종말론 쪽에 마음이 기운다. 홍수로 물난리가 난 뉴스 보도 화면을 보면서 지구촌 뉴스에서 보던 가뭄이나 계절에 맞지 않은 장마와 폭설, 무더위가 우리나라에서는 없으리란 법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푸틴 곁에는 핵폭탄 스위치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이가 있다는데 핵폭발로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쓰고 싶어도 버는 소득이 없다. 빨리 돈벌이를 해서 수입의 90%를 소비하면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하다. (10%는 누군가를 후원하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