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글쓰기
테드 창의 단편 ‘이해’를 읽던 중이었다.
식물인간이던 주인공이 치료제로 호르몬 K를 주입받고 깨어난 후 예기치 못한 인간 능력의 상승을 겪으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보통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정확히 인지할 수 있음을 깨닫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내가 느끼는 모든 기분의 원인을 깨닫고, 내가 내리는 모든 결정 뒤에 자리 잡은 동기를 인식한다.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中 단편 ‘이해’ 92쪽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며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됨을 아는 것도 머리가 좋아야 가능한 일이구나 싶었다.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느꼈다. 역시 난 머리가 좋지 못해.
내가 느끼는 감정의 정체도 모르고 그 출처에 관해서는 더욱 무지한 게 바로 나다. 내 마음을 나도 진짜 모르겠다.
얼마 전 지인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나 : “나는 A를 보면 누군가 떠올라. 뭔가 세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암튼 내가 무서워하는 인상임에 틀림없어.”
지인 : “맞아. 나도 그렇게 느꼈어.”
나 : “(둘 다 잘 알고 있는 또 다른 지인)B를 처음 봤을 때도 인상이 강하다고 생각했어.”
지인 : “B씨 의사잖아.”
나: “응. 나도 알고 있어.”
이 짧은 대화에서 나의 감정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었다. (어디게요?)
강한 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뜬금없이 직업으로 화제를 전환한 지인의 언급 때문이었다. B가 회사원이나 공무원이었다면 혹은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면 맥락 없이 ‘B씨 7년차 직장인이잖아.’ 혹은 ‘B씨 오너 셰프잖아’ 와 같은 말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의 대답은 ‘아니오’.
의사라는, 우리 사회에서는 특권일 수 밖에 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기에 B에 관한 어떤 화제가 나오든 그의 직업은 맥락과 관계없이 언급되는 것이다.
“B씨 노래 잘한데.”
“B 의사잖아.”
“대학 다닐 때 B씨 행글라이더 동호회였다더라”
“근데 B 의사잖아.”
이런 식의 대화를 상상하다 혼자 갑작스레 기분이 나빠졌고 대화를 급하게 마무리했다. 책을 읽으며 며칠 전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도대체 ‘의사’라는 말이 나의 기분을 건드린 이유는 무엇일까.
인지 능력이 겨우 요만큼인 나는 단편 속 주인공과 달리 기분 변화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 어디 추측이라도 해볼까.
남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에 민감한 편이다. 전문직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무 뜻 없이 남편이 건넨 누구누구 와이프가 교사나 의사라는 말은 유난히 날카롭게 가슴에 꽂히곤 했다.
일반인 연애 프로그램에 ‘의사’라는 강력한 명함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을 보며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의사. 변호사. 교사. 직업 자체만으로 상당 부분 삶을 긍정적으로 인정받고 뭇 사람들의 호의적인 시선을 얻는 이들에 대해 부러움 혹은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어딘가 모임에서 처음 만난 사람으로부터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을 받는 일은 늘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20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내가 맡은 일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일도 누군가의 흥미를 끌만 한 일이 아니라고 여겨왔다. 지금은 더욱 그렇다. 집에서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게 주된 일인 삶에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당당하게 나를 증명할만한 직업이 없어서 남들의 명함에 그토록 예민하게 굴었다. 뜬금없었던 것은 ‘B는 의사’라는 말을 꺼낸 지인이 아니라 아무 뜻 없는 말에 감정이 상한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의 이면을 들여다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후련하기도 하다. 사소한 감정 변화 하나를 파악하는데 이렇게나 많은 품이 든다.
오늘 아침에 갑작스레 번복했던 결정과 상대방이 상처 입을 걸 뻔히 알며 무심한 척 뱉은 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들만 연구하기에도 하루가 짧겠다.
아, 나는 나를 너무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