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

by 김모씨

부쩍 거울보기가 싫어졌다. 흰 머리가 군데군데 눈에 띄는 데다 앞머리가 눈을 찌른 지 꽤 되었다. 나의 머리는 뿌리염색, 커트, 파마가 필요한 총체적 난국 상태였다. 주말에 미용실 방문을 계획했다. 아파트 상가의 미용실을 이용한 지 몇 년째. 머리 스타일은 답보상태다. 이번에도 똑같은 삼각김밥 머리(이른 바 C컬)를 할 것인가.


약 5년 째 같은 머리 스타일 유지 중이다. 디지털 펌-뿌리염색-커트를 오가는 무한 반복이 지겨워졌다. 인터넷으로 단발머리 사진을 검색해보았다. 요즘 자주 눈에 보이는 시크해보이기 그지없는 똑 단발을 ‘테슬컷’이라고 부르나보다. 시도했다가 망할 것 같다. 한참 사진을 넘기다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발견했다. 오랜만에 스타일 변화를 시도해보는 데 아파트 상가 미용실은 적당할 것 같지 않다. 미용사의 실력을 폄훼하는 게 아니다. 나를 ‘똑같은 머리를 몇 년 째 고수하는 변화를 싫어하는 손님’으로 인식하고 있을 것 같다. 나에 대한 편견이 없는 다른 미용실을 찾기로 했다.


지역 커뮤니티에 포스팅 된 글을 보고 예약을 했다. 아파트 상가를 벗어난 번화가(?)에 위치한 1인 샵 미용실이였다. 시간 맞추어 방문하니 어여쁘게 생긴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본격적인 시술 전 테이블에 앉아 상담을 시작했다. 집에서 캡처해온 사진을 보여주고 가격 합의를 마쳤다. 모든 과정은 상담지에 기록되었다. 스피커에서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장님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준다. 잘 모르겠지만 약도 좋은 걸 써준다니 믿음이 간다. 조명이 훌륭해서 그런지 부담스러운 전신 거울에 비친 내 모습도 그렇게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다. 머리를 감기위해 누운 침대는 내가 누워본 어느 미용실 침대보다 편하다. 과장하자면 우주선에 탄 기분이다.


물론 염색에 영양이 추가된 퍼머 비용은 동네 미용실보다 비쌌다. 30%할인된 가격인데도 그렇다. 할인이 없으면 영영 이용해보지 못할 서비스일 테다. 나로서는 다소 무리인 가격을 치르기로 합의하고 시술을 받으며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하물며 같은 동네에서도 서비스 차이를 느끼는 데 연예인들이 이용하는 곳, 가령 퍼머가 한 50만원쯤 하는 곳은 천상계와 같을 지도 모른다.


‘내가 지불할 수 있을 만큼의 서비스만 경험하다 죽겠구나.’ 까지 생각이 발전했다. 아니, 내가 쓰는 돈 만큼 딱 그만큼만의 대접만 받다 갈 생각을 하니 서글퍼졌다. 나와 우리 가족이 먹는 것, 입는 옷, 사는 집, 타는 차에서 아이가 받는 교육까지 모든 것이 소비할 수 있는 허용 범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는 명백한 사실을 미용실 거울 앞에서 마주했다.


소비의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하는 삶. 아파트 단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 그 밖을 상상할 수도 만나볼 수도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와 아이의 삶이 아파트 단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겁이 나기 시작했다.

소비를 뛰어넘는 만남과 대화를 하고 싶다. 치르는 돈을 넘어서서 존재하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하나 고민하는 사이 장장 네 시간에 걸친 머리가 완성되었다. 달라진 내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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