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짜리 여섯 장. 명절날 세배를 하고 받은 돈. 친척, 주변 어른들에게 받은 것을 차곡차곡 모아놓은 것이었다. 단단하고 고급스러운 과자 상자에 여러 가지 소중한 것들과 함께 보관해놓았다.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다. 아버지는 이미 술을 마신 후였고 어머니를 비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방에서 숨죽이고 문밖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것으로 시작해 어머니를 비난했다. 분노와 체념에 뒤섞인 아버지의 외침을 들으며 나는 무기력하게 상황이 종료되기만을 기다렸다.
몇 마디 받아치던 어머니의 목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들려오지 않았다. 부모님의 싸움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오가는 대화는(그걸 대화라 부를 수 있다면)의 대부분은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외침, 비난, 점점 높아지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어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침묵으로 응했다. 한참을 홀로 외치다가 그치는 아버지. 그러고 나면 집안엔 정적이 감돌았다. 길게는 몇 주씩.
너무 많은 말들을 한꺼번에 외쳤는지 아버지는 큰 싸움이 있고 나서는 며칠씩 아무하고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입을 꾹 담은 채 일어나 출근을 했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다시 출근할 때까지.
부모님의 다툼이 있던 많은 날 중의 하루였다. 아버지의 분노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어머니와 고성을 주고받다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다.
잠시 후 아버지가 내가 있는 방문을 열었다. 조금은 상기된 얼굴이었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다정한 몸짓으로 다가왔다. 어색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딸에게 아버지가 물었다.
“00아, 너 돈 좀 있니? 아빠가 술 한 잔 하고 싶어서.”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소중한 과자 상자를 열어 만 원 짜리 여섯 장을 아버지에게 건넸다. 돈을 건네받은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갔다.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나가고 나는 그저 상황이 종료된 것에 안도했다. 조금은 어리둥절한 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아버지가 돌아왔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다시 내가 있는 방에 들어왔다. 내 앞에 앉은 아버지는 나에게 돈을 돌려주었다.
“도저히 이 돈을 쓸 수가 없었어.”
돈을 돌려주는 아버지가 울고 있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 아버지와 나만 아는 이야기. 어쩌면 아버지는 잊어버렸을지도 모르는 나만 기억하는 이야기.
사소한 기억이지만 손에 쥔 지폐의 느낌, 아버지의 눈물과 당황스러움이 어제의 것처럼 기억되는 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