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분야에서 차곡차곡 이력을 쌓아가는 지인을 만나고 돌아왔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고 노력해오고 있지만 그 앞에서 나는 아주 작아지고 말았다. 왜 내가 하는 모든 행위에는 ‘방구석’ 이란 말이 어울리는 걸까. ‘방구석’ 책 읽기, ‘방구석’ 글쓰기, ‘방구석’ 영화보기.
방구석에서 책 읽고 열심히 영감 받아 글도 쓴다. 방구석에서 이런 저런 일들을 계획해보고 꿈꿔보고 열의에 불탄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방구석에서 사그라든다. 집밖으로 한번 나가보지 못한 채. 그때 그걸 꾸준히 해봤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럼 난 지금 무언가 되어있을 텐데. 회사원이라든가 영어 선생님이라든가 하는 커다란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다른 삶을 부러워하다 비교하고 자괴감에 빠지는 루트. 자주 겪는 일이다. 내 안의 불만을 주변의 가장 연약한 존재인 아이에게 터뜨리고 말았다. 이보다 더 못날 수가 없다. 짜증을 부리고 아이보다 먼저 잠이 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무언가 신경이 거슬려 눈을 떠보니 아이는 침대에 달린 독서등을 켜둔 채 홀로 울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깨어있어야 안심하고 잠이 든다. 그걸 알고서도 화가 났다는 이유로 아이를 두고 먼저 잠을 청했다. 남의 삶을 부러워하다 정작 현재 가장 큰 정체성인 ‘엄마’로서의 삶에 충실하지 못했다.
아이를 안심시키고 다시 자리에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 저리 뒤척이다 글감이 떠올랐다. ‘아무 것도 못된 자의 슬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핸드폰에 메모를 해 두었다. 뭐 그리 대단한 걸 쓴다고 이런 상황에도 글감을 떠올리는지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슬픔에 뒤척인 밤을 보내고 맞은 아침.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다시 책상 앞에서 밀린 영어 강좌를 1.6배속으로 두 개 연달아 들었다. 뚜렷한 목적 없는 영어공부이지만 빠지면 섭섭한 루틴이다. 활동비를 벌려고 공공기관 단기 일자리 지원 서류를 빠짐없이 스캔하고 온라인 지원을 마쳤다. 신청한지 잊고 있던 도서관 강좌의 줌 링크를 문자로 받고 서둘러 샤워하고 카메라를 켰다. 강의를 마치고 강연자의 인스타그램을 방문해 강연소감을 남겼다.
이제 빈문서를 마주할 시간이다. 또다시 ‘방구석’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되진 못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삶을 사는 건 아니다. 마음을 쏟아 돌보아야 할 아이와 가족이 있고, 함께해서 즐거운 관계가 있다. 그리고 무언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나만의 삶이 있다. 활동 무대가 주로 방구석이긴 하지만 이 작은 공간에서도 영감을 받으며 써야할 것들을 발견한다. 결국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할 운명일지라도 이런 저런 꿈과 계획이 있다. 그리고 항상 해야 할 일, 밀린 일들이 가득하다. 결과물이나 보이는 성과가 없어서 아쉬울 뿐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며 삶을 채워가고 있다.
어젯밤 스스로를 아무 것도 되지 못한 삶이라고 단정하고 심난했다. 날이 밝아 글을 쓰는 지금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삶이라고 정정하고 싶다. 언젠가 방구석 삶이 좀 더 넓은 세상에 진출할 날을 고대하며 오늘도 열심히 보고 듣고, 읽고 쓰고 생각하며 하루를 살아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