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게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밥을 챙겨 먹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집에 머무르거나 집을 나서는 것. 하루의 일정을 빠짐없이 소화하는 것. 아이를 챙기고 공과금을 밀리지 않는 것.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고 자리에 눕는 것. 이런 게, 이런 모든 것들이 과연 살아간다는 의미일까. 정말 이게 전부일까.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는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묻게 만든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인가 의문은 깨달음으로 변해간다. 아, 나는 살아지고 있었던거구나. 주체적으로 내 삶을 꾸려나갈 생각은 왜 지금까지 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인데, 내 삶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책은 현대인이 삶을 진정 사랑하고 있는지 질문하며 시작하고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라는 당연하지만 잊고 있는 진리를 다시금 강조한다. 강요받은 이타심에 대해 말하며 보편적이라 믿고 있던 진리와 정의에 새로운 질문을 제기한다.
창의적인 삶에 필수적인 ‘감탄하는 능력’을 얼마나 잊고 살았는지 돌아보게 하고 진정으로 보고, 듣지 않고 살아온 지난날을 떠올리게 만든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주기적으로 무력감을 호소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짐작하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기본 소득으로 자유를 얻으려면>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굶어 죽지 않는 것을 목표 삼아, 그것을 동력으로 살아온 현대인에게 기본 소득은 자유를 가져다 줄 수 있을까. 기본 소득 말고도 빵, 우유, 채소와 같은 일정 소비재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일할 의욕을 잃고 한없는 무기력에 빠질까. 혹은 좀 더 자유롭게 인생을 탐구하고 예술에 매진할 수 있지는 않을까.
저자는 기본 소득 정책이 성공하려면 심리학, 철학, 종교, 교육학 등 다른 분야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기본 소득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마법의 주문이 될 리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 전체 소득의 10퍼센트를 경제적으로 무익하며 모두를 위험으로 몰고 갈 군사 비용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기후 위기 문제를 지구적 관점에서 고민하고 행동을 취한다면, 이러한 변화를 상상하기에 그치지 않고 실천해 나갈 수 있다면 일련의 과정에서 ‘기본 소득’은 대중을 사로잡는 일부 정치인들의 공염불로는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성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에서 ‘소비하는 인간’으로 변해가는 현대인을 지적하는 글을 읽으며 나 역시 다르지 않음을,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는 행위 뒤에 숨은 공허함을 마주할 수 있었다.
소비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 자유를 획득했다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자각 후에는 당연하게도 ‘어떻게 다시 삶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생겼다.
쉬운 것부터 시작하자. 시작은 깨달음이다. 가만히 앉아 바라보려는, 들어보려는, 명상하려는 노력을 해보자. 쉬운 것부터 시작하자고 말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쉼 없는 행동의 강제와 분주함에서 헤어 나오기. 순간을 살기. 내 앞에선 사람을 진정으로 바라보고 귀 기울이기. 내 삶에 주도성 찾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