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생산적인 하루

by 김모씨


열 시가 넘어 잠에서 깼다. 오늘은 수영장이 쉬는 날이다.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지 아무런 대책 없이 하루를 맞았다. 그것부터 잘못된 걸까.

일단 자고 일어난 곳이 집이 아니었다.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지인의 집에서 신세를 지는 일이 잦은 요즘이다.

에어컨은 없더라도 ‘내’집이 가진 힘이 있다. 평소라면 눈을 뜨면 습관처럼 블루투스 스피커의 전원을 연결하고 라디오를 들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지인의 방에서 늘어져 있다가 지인이 차려준 아침을 받아먹는 호강을 누렸다. 차려줘도 누리지 못하는 팔자인 건가. 몸은 편한데 개운치가 않다.


집에서 하기 싫은 밥을 하고 투덜대며 뒷정리까지 마치고 난 후 찾아온 감정은 홀가분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앉아서 해주는 밥을 얻어먹고 뒷정리도 하지 않고 방으로 돌아왔다. 딱히 할 일이 없어 드러누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이보는 일도 지인에게 맡기고 본격적으로 게으름을 피웠다. 오늘도 하루 더 신세를 지려고 집에 들러 캐리어에 온갖 잡동사니를 싣고 왔다.

오후에 한 일이라고는 뒹굴거리며 영화 한 편을 보고 지인이 차려준 이른 저녁과 함께 맥주를 진탕 마신 게 전부다. 지인의 방에서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보다 아이와 자야 할 방으로 돌아왔다.

잠자리에 누우니 짜증이 몰려왔다. 하루를 망쳤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잠도 오지 않고 기분이 불쾌해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 전원을 켰다. 글감도 없고 영감받은 일도 없는 하루, 한동안 빈 문서를 노려보다 겨우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서 챙겨주었고 나는 종일 그걸 누리면 되는 하루였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했다. 글을 쓰며 돌아보니 불편함의 정체는 내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일을 빼앗긴 느낌 때문이었다.

밥하고 집안 치우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느꼈다.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누군가 날 위해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해주는 일이, 가만히 앉아서 편안함을 누리는 일이 못 견디게 불편했다. 그 일마저 하지 않으면 도대체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하는 일이 없었다.


집이 그리웠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돌리는 일. 빨래가 다 되면 꺼내어 건조대에 너는 일. 다 된 빨래를 개어 서랍마다 옮겨 넣는 일. 삼시 세끼 무얼 먹일까 고민하는 일. 설거지며 뒷정리를 하며 투덜대며 하는 일. 청소기를 돌리고 별 티도 나지 않는 집안을 정리하는 일. 나를 주저앉게 만든다고 단정했던, 언젠가 반드시 벗어나리라 다짐하게 하는 일. 그 일에서 벗어난 지금 마음이 편치 않다는 이 아이러니.


오랜만에 알바몬을 켜고 맞춤 일자리를 검색해보았다. ‘40대’,‘화순’,‘주부’. 세 가지 조건에 맞게 정렬된 일자리를 하나하나 확인해보았다.

결국 여기까지 왔다. 매번 같은 종착지. 제발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 무언가 재화가 되는 것, 눈에 보이는 것을 창조하고 싶다. 가령 통장에 찍히는 숫자 같은 것.


나를 삼시 세끼와 온갖 집안일에서 벗어나게 해준 지인은 휴가를 마치고 일터로 돌아간다. 나는 챙겨온 잡동사니를 캐리어에 담아 집으로 향할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생산적인 일을 하는 유일한 나의 일터인 우리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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