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입금 날

주5일 글쓰기. 매일 한꼭지 쓰기.

by 김모씨



오늘은 19일 금요일! 기본 소득이 입금되는 날이다. 20일이 주말인 관계로 하루 더 일찍 만나는 나의 월급.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아 달라고 나라에서 매달 통장으로 입금을 해주다니. 마흔 살이 넘은 나이에 노동을 하지 않고도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용돈 받는 날이 올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아직도 매월 통장에 찍히는 기.본.소.득. 네 글자가 주는 행복감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통장을 확인하고 단골 미용실을 찾았다. 뿌리 염색에 열 파마까지 세 시간이 넘게 앉아 머리를 했다. 15만 5천 원. 꽤 큰 돈을 기본 소득으로 지불했다.

미용실에서 수다를 부담스러워하는 스타일이다. 말수가 적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1인 매장을 찾아 정착했다. 다른 손님에게 어떻게 대하실는지 몰라도 간단한 안부를 묻고는 사장님은 세 시간 내내 머리에만 집중하고 있다.

책도 음악도 없이 눈을 감고 본격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문득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감은 눈을 뜨고 나에게 카톡을 보낸다. 오후엔 이걸 글로 좀 써봐야겠다.

멍때리다, 글감을 찾다가, 아까 읽은 책의 장면을 곱씹어 보다가, 내일을 계획하다가 모든 것을 할 만큼 하고 이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려는데 모든 시술이 끝났다. 머리가 상당히 짧아졌다. 산뜻한 기분으로 미용실을 나선다.


미용실 옆 의류매장에 전시된 가을 신상품을 바라보고 섰다. 음. 누구에게 아주 잘 어울리겠군. 나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를 쓰고 있는 그 사람이 생각난다. 선물해주면 아주 좋아할 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더 좋을 테고.

이미 너무 많은 돈을 썼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직 더우니까. 조금 더 찬 바람이 불면 그때 사주어도 늦지 않아. 월말에 후회하지 말고 아껴쓰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시원한 콤부차를 한 잔 타서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고 미용실에서 적어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작성한다. 저장 버튼을 누를 때 느껴지는 성취감을 기대하면서 네이버 사전에 맞춤법을 쉴 새 없이 검색하며 내 이야기를 적어 나간다.

주말엔 서점에 들러야겠다. 도서관에서 대출해보고 꼭 소유하고 싶었던 책과 그날 서점에서 찾은 느낌이 오는 책, 이렇게 두 권을 사 와야지.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책 읽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기본 소득은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읽는 삶과 쓰는 삶 모두 풍족해졌다. 굶어 죽을 걱정, 남에게 빌붙어 사는 자괴감 없이 삶을 꾸려나가게 해주었다.


여기까지. 어제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며 떠오른 글감으로 쓴 글이다. ‘오늘이 남편의 월급날이 아닌 내 통장에 기본 소득이 입금되는 날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시간이라도 아르바이트를 하느냐 글쓰기에 전념을 하느냐. 남들이 안 하는 고민을 나름 심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나는 노력이나 정신력(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걸까. 정신력을 발휘하지 않고 기본 소득으로 약한 멘탈을 유지하며 살 수는 없는 걸까. 기본 소득 받으며 글 쓰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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