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글쓰기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많은 걸 공유하고 싶어진다. 추억부터 음식, 영화 취향. 좋아하는 책, 장소. 그리고 음악까지. 나를 좋아하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당연히 좋아해 줄 거라는 기대 혹은 착각을 품게 된다.
자연스럽게, ‘난 이런 것들을 좋아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해 주지 않겠니.’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상대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하나, 둘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게다가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내 취향의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보기에도 바빠 죽겠다.
어쩌면 상대보다 스스로를 더 사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너무 좋다. 내 취향을 너무 사랑해서 타인의 취향이 끼어들 틈이 나지 않는 것이다.
보내준 영상을 확인하지도 않고 잘 봤다고 말할 순 없기에 재생 버튼을 누르고 딴짓을 한다. 영상이 끝나면 노래 선물 고맙다는 답장을 보낸다. 아마 다시 그 노래를 찾아 듣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
변명을 하자면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다. 그 사람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듣고 보는 음악과 영화가 좋았던 적이 분명히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한 이십 년 전에.
시끄러운 메탈 음악을 하는 밴드를 좋아하는 남자친구를 만나 일부러 음반을 사서 들었다. 생전 볼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을 찾아봤다. 그 사람이 좋고 알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취향도 추억도 모조리 닮을 수 있다고 믿었고 그 사람과 나를 동일시 했다.
끝은 물론 좋지 못했다. 반짝 노력으로 누군가의 취향을 따라잡는 일은 불가능했다. 서로가 너무 다르다는 결론만 얻고 메탈 밴드의 앨범과 취향이 맞지 않던 영화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사랑하는 사이에도 이러한데 웬만큼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공유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함께 좋은 걸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돌아오는 길, 잘 듣고 있던 윤도현의 라디오를 끄고 들어보기를 권하며 가곡을 연신 재생하는 상대방을 참기 힘들었다.
“좋은데요.” ,“덕분에 교양 좀 쌓는군요.”와 같은 영혼 없는 반응을 보였다. 상대방도 눈치를 챘는지 이제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꺼내 보라고 요구했다.
“그냥 윤도현 듣죠.” 나도 모르게 본심이 나오고 말았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긴 시간 동안 상대는 더는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지 않았다.
마음을 너무 닫고 사는 건 아닌가 싶다. 순수하게 자신이 좋은 걸 함께 나누려는 선한 의도일 뿐일 텐데, 내가 너무 꼬였나 싶기도 하다.
어쩌면 나의 취향을 존중받지 못한 기억에 의기소침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용기를 내어 최근에 감명 깊게 본 영화나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음악 취향을 나누었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시큰둥해 상처받은 기억이 분명히 있다.
아. 소심도 병이다. 그런 기억 때문에 마음을 꼭 닫은 채 나는 절대 너의 취향에 동조하지 않겠다 각오를 다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타인의 취향에 좀 더 관대해지고 싶다. 아니, 관대해지기 어려우면 작은 호기심이라도 갖고 싶다. 저 사람은 왜 가곡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왜 버블 경제 시기의 일본 가요가 좋을까. 왜 독립영화만 볼까. 저건 취향인가 똥고집인가. 아니, 이건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기의 취향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은 솔직한 자신을 내어 보이는 용기이자 나와 더 친밀해지고 싶다는 좋은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상대의 플레이리스트 공유에 과민반응 보이지 말지어다. 그리고 상처받을 걱정하지 말고 나의 플레이리스트도 당당하게 공개할지어다.
오늘도 제목과 영 다른 결론으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