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에 대하여

주5일 글쓰기

by 김모씨

책임에 대하여


책임감이 없는 편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가까워졌다 싶으면 서둘러 발을 빼곤 한다.

그 사람과 내 마음이 같음을 확인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다시 찾아온 사랑에 감사했고 사는 게 사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끊임없이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나의 모든 걸 다 줄 듯이 굴었다. 언제까지고 함께 하자며 함부로 미래를 약속했다.

그랬는데.


하루에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일과가 시작되기 전 딱 한 시간이다. 새벽 여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

혼자서 좋아한다고 확신하던 때,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했던 그때는 그 사람 얼굴을 보고 조금이라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다섯 시 반이 되면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그렇게 한동안 새벽에 그 사람과 함께 걸었다.

얼마 안 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공교롭게도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그 시점에 새벽 걷기를 그만두게 되었다.

여름방학 동안 종일 붙어있는 시간이 많았다. 이제 방학이 끝났다. 종일 함께하는 건 불가능하다. 얼굴을 보려면 다시 새벽에 그 사람을 만나야 한다.


월요일. 개학 첫날이라는 이유로 만남을 미뤘다. 화요일. 겨우 일어나 집을 나서서 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나를 위해 준비해준 아침을 먹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눈을 떠서 전화기를 확인하니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바로 일어났다면 다만 얼마의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을 거다. 함께 커피를 마시거나 어제와 오늘의 일과를 나누며 동네 산책을 할 수 있었을 테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 문자를 보냈다. 옆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 핑계를 대고 못 간다고 통보를 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거짓말을 한 게 마음에 걸려 확인하지 않고 전화기를 덮어 두었다.

더 자고 싶었다. 오전 시간에 무언가를 쓰는 게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과의 만남은 이미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그 사람을 마주쳤다. 숨기지 않고 나에게 서운한 마음을 보이는 상대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 내내 아침의 일을 생각했다. 그 사람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그 마음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이 아닐까. 나를 좋아해주고 사랑해주는 마음에 대한 책임감. 함께 사랑을 말했던 일에 대한 책임감. 이미 시작해버린 것에 대한 책임감.


어마어마한 책임감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저 예전처럼 매일 오전 여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 한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게 전부다. 그게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함께 하는 새벽 한 시간을 일과표 제일 첫 줄에 적어넣는다. 내일은 내 마음에 대한 책임을 다하리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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