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변할 수 있다

주5일 글쓰기

by 김모씨


오전에 온라인 공부 모임이 있는 월요일이다. 두꺼운 책을 읽고 한 명씩 정해진 분량을 요약해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수업 중 유난히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코스모스 555쪽


책을 읽으며 인간 존재에 대한 환멸과 희망이 번갈아 찾아왔다. 인간을 ‘나’로 바꿔도 같은 이야기다. 끊임없이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에 좌절하고 희망의 증거를 찾아 헤매는 존재가 바로 나다.

과연 인간이(=내가) 변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변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많은 생각이 스쳤다. 인간 존재에 대한 심오한 물음을 던지던 와중 참을 수 없이 사소한 문제가 떠올랐다.


‘아, 어제 온라인으로 산 옷 배송 시작하기 전에 취소해야 하는데.’

분명히 어제까지 한여름이었는데 자고 나니 가을이 되었다. 공기가 달랐다. 어제까지 입던 티셔츠를 바지에 넣어 입고 집을 나섰는데 어제의 느낌이 아니었다.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버스 자리에 앉자마자 팔을 뻗어 에어컨 바람 구멍을 막았다.

내일부터는 긴 소매의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는 똑같은 그 생각이 들었다. 작년 가을에 나는 뭐 입고 살았던 걸까.


급하게 입을 옷이 없을 때마다 찾게 되는 의류 쇼핑몰을 방문했다. 카테고리별로 나누어진 옷들을 훑어보며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기 시작했다.

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입는 흰색 기본 티를 맨 먼저 넣고 지난여름 주야장천 입은 검은 슬랙스 바지를 가을용으로 넣었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주는 줄무늬 티셔츠를 담고 지난가을 도대체 뭘 신고 다녔나 잠시 떠올려보다 검은 컨버스 운동화를 마저 담았다.

이렇게 긴 팔에 긴 바지와 운동화를 가을에도 교복처럼 입고 다닐 내 모습이 그려졌다.

일단 급한 불을 껐다 싶어 서둘러 쇼핑을 마치고 결제창으로 가려다 ‘OPS&SKIRT’ 버튼을 눌러보았다. 음. 플리츠 스커트. 음. 루즈핏 원피스. 내가 입으면 포대 자루를 걸친 것처럼 보이겠지.

그래도 나와 어울릴 뭔가 있지 않을까? 사진 속 여리여리한 모델들 말고 현실의 내가 입은 모습을 상상하며 페이지 목록을 넘겼다.

“아니야. 아니야. 오, 절대 안 될 일이야.”를 반복하다 뒤로가기 버튼을 주춤하게 한 상품을 만났다.

이름도 어려운 ‘터크 버튼 뒷밴딩 코튼스커트’. 표현하기에 따라 펑퍼짐하기도 하고 아방가르드한, 쉽게 말하자면 베이지색 고무줄 면 치마였다.

상품에 담긴 258개의 리뷰를 한 개도 빠짐없이 읽었다. 모델과 사뭇 다른 착용 사진을 공유해준 이름 모를 이들에게 감사하며 사진이 담긴 리뷰는 꼼꼼하게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혹시 이 치마 나에게 잘 어울리는 거 아닐까. 물음이자 바람을 담아 상품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고작 24,800원인데 정 안 어울리면 누구 줘버리고 치마는 절대 사지 않는다는 교훈 얻은 값으로 치자며 구매 버튼을 눌렀다. 오랜만에 스커트를 시도해본다는 흥분에 역시 평소 입지 않는 스타일인 니트 카디건도 함께 구매했다.

배송이 시작될 영업일인 월요일 아침, 치마와 카디건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확신하며 구매를 취소하기로 했다. 치마 대신 통이 넓은 청바지와 맨투맨 티셔츠를 사서 교복처럼 입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소비라 생각하며.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저 구절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다. 취소 버튼을 누르려 쇼핑몰을 방문해 상품의 사진을 다시 보았다. 모델의 어여쁜 얼굴과 얇은 팔, 다리를 지우고 내 모습을 다시 상상해 보았다. 역시 저 옷이 내 옷이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혼자 돌아다니는 일도 많은데 영 이상하면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고 홀로 입고 싸돌아다니라 다짐하며 그대로 구매를 진행하기로 했다.


배송 상태를 확인해보니 여전히 ‘배송 준비’ 단계이다. 기분 좋게 택배 상자를 열고 가을옷을 받아 볼 모습이 그려진다.

구매를 망설이던 스커트가 나에게 제법 잘 어울린다. 사람들에게 잘 어울린다고, 너에게도 ‘여자 여자’한 모습이 있다는 말을 듣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상상이자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다. 나는 치마도 잘 어울리며 앞으로도 다양한 치마를 입고 살 것이라고.

성격, 외모, 취향, 식성, 체형처럼 스타일도 변할 수 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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