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챕터.에필로그.

주5일 글쓰기

by 김모씨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본 후 쓴 글로 영화 내용이 포함된 글※


의대에 진학했다가 진로를 바꾸고 심리학 공부를 잠시 맛본 후, 사진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여자가 있다.

이제야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외침이 무색하게 사진작가로서 경력을 쌓는 일에는 뒷전이고 여자는 연애 사업에 바빠 보인다.


지금 막 진지한 관계를 시작한 연인은 마흔 살이 넘은 제법 성공한 만화가이다. 나를 사랑해주며 함께 미래를 꿈꾸어 볼 만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연인과의 관계에 만족할 만도 한데, 무언가 여자의 마음을 괴롭힌다.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걷는 연인을 보는 여자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손바닥 뒤집듯 인생의 행로를 바꾸는 동안 내색하진 않았지만 여자는 불안했을 테다. 방황은 이제 그만하고, 시간제 일자리가 아닌 자신만의 영역에서 경험을 쌓고 성과를 내고 싶었을 거다.

사랑하는 연인으로도, 평생을 함께 한 가족으로도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건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채워줄 수 없는 것이다.

답은 하나, 그저 스스로가 살면서 해결해야 한다. 나의 빈구석을 채워가는 과정과 시도를 어쩌면 ‘성장’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성장의 과정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실수 혹은 삽질을 되풀이하면 죽고 싶을 만큼 자신이 싫어지고 가끔은 나를 아끼는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호되게 성장통을 겪는다. 영화나 책 속에서 그런 사람들을 자주 만나 볼 수 있다.


오늘 본 영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는 프롤로그와 열두 개의 챕터,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 역시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니 인생의 새로운 장으로 전환되는 몇 가지 결정적인 장면이 떠올랐다.

극장을 나서며 나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으며, 과연 그 이야기의 몇 번째 챕터일까 궁금해졌다.


내 나이는 벌써 마흔인데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야기는 발단과 전개를 넘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이야기에 엄청난 반전이나 완벽한 해피엔딩 같은 건 없을 거다.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처음과 비교해 조금 더 성장한 나이기를, 아무도 채워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스스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기를 바랄 뿐이다.


(에필로그 속의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자립했다. 이 두 가지면 만족스러운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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