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재킷을 입은 여자

주5일 글쓰기

by 김모씨


읍내까지 자차로 운전하면 20분, 한 시간에 한 대 운행을 하는 217-1번 버스로는 대략 50분이 걸린다. 아이가 등교하면 나도 출근하듯이 매일 버스를 타고 읍내로 향한다. 요즘 한창 재미에 빠진 수영을 하러 가기 위해서다.

종점인 집 앞 정류장에서 버스에 타면 주로 오른쪽 뒤에서 두 번째 좌석에 앉는다. 그때부터 이어폰을 꽂고 느긋하게 창밖 풍경을 바라보곤 한다.

나를 제외한 버스 승객은 모두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이다. 몸집보다 큰 작물 꾸러미를 수레에 싣고 읍내 장으로 향하는 어르신들은 버스의 주고객이다.


어느 날부터 논과 밭으로 이어지는 시골 마을 정류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스타일의 젊은 여성이 버스에 탔다. 시선을 두지 않은 척했지만 얼핏 보아도 옷차림과 분위기가 매우 세련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이제는 그녀가 타는 정류장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오늘은 무엇을 입었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매일 버스에서 그녀가 선택한 ‘오늘의 스타일’을 흘끔대는 일은 어느덧 일상이 되어갔다.


오늘도 217-1번 지정석에 앉아 그녀가 타는 정류장을 지났다. 오늘 그녀는 하늘색 셔츠에 통이 넓은 청바지를 입고 검은 재킷을 걸쳐 입었다. 다른 날보다 좀 더 포멀한 차림을 한 그녀는 정말인지 멋져보였다.

논과 밭으로 이어진 마을에서 검은 재킷을 입고 이른 아침 집을 떠나 그녀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그녀에게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했다.


검은 재킷을 언제 마지막으로 입었더라.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20대 후반 직장 생활을 했을 때였다. 포멀한 재킷을 입어본 지 어느 덧 10년이 지났다.

입을 일이 없었다. 중요한 행사라곤 10년을 합쳐도 얼마 되지 않는 지인의 결혼식과 지인 자녀의 돌잔치, 학교 선생님과의 상담뿐이었고 그때마다 검은 재킷은 선택지에 없었다.


‘나도 검은 재킷을 입고 싶다.’


버스에서 내리며 이런 마음이 들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는 기본 티셔츠에 편한 바지 말고. 휘뚜루마뚜루 입기 편한 야상 점퍼 대신 ‘검은 재킷’을 입고 싶다. 누가 보기에도 신경쓴 차림새로 중요한 곳에 가고 싶다.

그렇게 검은 재킷을 입은 나의 모습을 그려보다가 엉뚱하게도 글을 더 열심히 써야겠다 다짐했다. 어쩌면 글쓰기가 나를 그런 ‘중요한’ 자리로 데려다줄지도 모른다는 다분히 김칫국 들이마시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글쓰기는 매일의 숙제이자 아무도 강요하지 않건만 혼자 사로잡혀있는 집착이기도 하다. 동시에 뿌듯함을 느끼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일과이다.

한 개의 의미가 더 생겼다. 글쓰기는 희망이다. 어쩌면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희망. 검은 재킷을 입을 일을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

설사 아무 곳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빈 문서에 무언가를 투닥투닥 이 글을 쓰는 동안 행복했으니 말이다.


글쓰기는 이렇게 희망도, 행복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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