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대한 꿈

by 김모씨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원대한 꿈 리스트를 작성하며 즐거워하는 저자를 보며 나도 한번 써 보기로 했다. 이루어질 가능성 따위 고려하지 않은 그야말로 원대한! 꿈 목록.

1. 나는 작가가 되었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책이 서너 권, 아직 베스트셀러는 없지만 알음알음 독자층이 생기고 있다. 책 제목 검색하면 자발적으로 작성한 서평이나 책 리뷰를 실은 블로그가 몇 개 눈에 띈다.

완전한 경제적 독립은 이루었다 하긴 힘들지만 내가 읽을 책 구매하는 비용, 작업하며 찾는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쓰는 부식비(?), 보험료와 국민연금은 내가 벌어서 내가 낸다.

가끔 가욋돈이라도 생기면 친구를 위한 선물도 구매한다.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 지난 생일 벼르고 벼르던 르쿠르제 대형 냄비를 선물하기도 했다.

남편은 회사, 아이는 학교를 가고나면 나는 나만의 작업 공간으로 떠난다. 편하게 읽고 쓸 수 있는 안락한 의자와 책상과 약간의 장비를 갖추고서 말이다.

2. 나는 일본어에 제법 능숙하다. 이제 일본어로 만화책을 읽을 수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만화책이나 짧은 에세이집을 원서로 구매해서 보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다. 많지 않은 수입에서 여행 자금으로 꼬박꼬박 모아둔 돈으로 혼자, 혹은 마음 맞는 누군가와 떠난 일본여행에서 지하철 노선, 간판을 읽을 수 있으며 여행자 티를 내며 간단한 회화정도는 현지인과 큰 제약 없이 나눌 수 있다. 일본 현지의 서점에 내가 읽을 수 있는 책, 읽고 싶은 책을 골라 구매 후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드러누워, 열차를 타고 장소를 이동하는 시간에, 혹은 지나가다 발견한 예쁜 카페에 앉아 맛있는 음료와 예쁜 디저트를 시켜놓고 간간이 읽어 나간다.

3. 평소 나의 하루는 달리기로 마무리된다.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보니 여기저기가 쑤셔오기 시작했다. 무턱대고 동네 한 바퀴 돌기 시작한게 루틴으로 자리잡았다. 저녁먹고 설거지거리를 세척기에 집어넣고(혹은 나 대신 누군가가 집어넣고) 가벼운 옷차림에 러닝화를 신고 머리를 질끈 묶은 채 밖으로 나간다. 이어폰을 끼고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힘들 때는 걷다가, 뛰고 싶을 때는 뛴다. 걷다보니, 뛰다보니 오전에 안 풀리던 글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떠올라 핸드폰을 꺼내 짧게 메모를 한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을 보내다 집에 돌아온다. 어느샌가 땀에 흠뻑 젖은 나, 입고 있던 옷을 빨래통에 훌훌 털어놓고 샤워를 하고 개운해진 몸으로 나와 소파에 푹 퍼져 읽던 책을 집어 들고 몇 자 읽다가 잠든다.

4. 사람을 만나는 일이 즐겁다. 내가 주최하고 있는 모임이 몇 년째 지속되고 있다. 나는 거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책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 받고 공감해주는 모임이다. 늘 하고 나면 힘을 충전 받는 모임, 모든 구성원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모임, 나는 그런 모임의 주최자이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망설임 없이 찾아갈 친구가 있다. 별다른 이벤트없이 만나서 밥 한끼하거나 차한잔 마시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그런 친구가 있다. 기쁠 때 기쁨을 나눌, 슬플 때 편하게 울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다. 가끔 밤에도 만난다. 원거리로 나들이를 갈 때도 있다.

이상, 나의 원대한 꿈이었다.

처음에는 상상만으로 너무 행복해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 이렇게 웃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눈물이 나서 얼굴을 감싸 쥐고 말았다.

원대한 꿈이라 적고 ‘간절한 꿈’ 이라 읽는다고나 할까? 하나하나 읽다보니 참으로 간절한 꿈이다.

이 꿈이 이루어질까요? 아니면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을까요? 혹은, 멀지 않은 미래에 나는 전혀 다른 꿈을 가지게 되는 건 아닐까?

일단은 매일 쓰고, 부지런히 읽고, 미뤄둔 일본어 수업을 오늘 당장 시작하고, 저녁엔 좀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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