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 머무는 곳

by 김모씨

최근 2021 김승옥 문학상 수상 작품 모음집을 읽었다. 수상작 뒤에는 작가의 소회를 담은 글이 짧게 실려있다. 몇 편의 글 속에서 작가가 단편을 구상하기 시작한 순간들을 엿볼 수 있었다. 흥미로웠다.

한 작가는 재개발을 위해 허물어지는 집의 잔해 속에서 커다란 해바라기 액자를 바라본다. 그는 거기서 작품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무엇이 작가의 시선을 붙잡았을까?

작품 속에서 실패만 거듭하는 아버지는 집안에 부를 가져다준다는 의미(혹은 미신)를 담은 커다란 해바라기 액자를 거실에 건다. 물론 액자는 아버지에게 부를 가져오지 못했다.

글을 읽으며 어린 시절 집안을 채우던 갖가지 소품과 가구들을 떠올려본다. 윗집, 아랫집, 옆집 모두 걸려있던 ‘카이저 뻐꾸기 시계’, 용산 전자 상가에서 거금에 들여온 ‘소니 전축’, 아버지가 5층까지 어깨에 짊어지고 올라왔던, 누군가에게서 얻은 꽃무늬 소파까지. 소소한 웃음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때로는 아픈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들.

일상 속에서 시선이 한곳에 고정될 때가 있다. 어제 버스를 타고 읍내에 다녀왔다. 전남대학병원을 경유하기에 버스를 탈 때마다 병원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어제 나의 시선이 멈춘 곳은 중년의 자식이 고급 중형차로 노년이 된 부모를 병원으로 모시고 오는 장면이었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닥칠 일. 좋은 차가 아니라도 나는 중년이 되어 어딘가 편찮으신 부모님을 뒷좌석에 태우고 병원을 오갈 것이다. 더 나이가 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뒷좌석에 앉아 부축을 받으며 병원을 오가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거부하고 싶지만 나만 피해갈 리 없는 삶의 순간들. 나의 시선을 붙잡아 한동안 무언가를 곱씹게 하는 장면들.

어쩌면 글감이 될 수 있는 반짝이는 순간들을 작가는 오래도록 부여잡고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대단한 집념이자 끈기가 아닐 수 없다.

학교 숙제로 일주일에 두 차례 일기를 쓰는 아이를 지켜본다. ‘무얼 쓰지?’ 빈 노트를 앞에 두고 아이도 글쓰기를 하는 모든 이들의 고민을 시작한다. “재미있는 일을 기억해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다.

무언가 끄적이고자 빈 문서를 여는 나도 매번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매일 재미있었던 일을 기억해 흥미진진한 글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 재밌었던 일보다 어딘가 잠시 시선이 머물렀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무엇이 나의 시선을 그 장면에 매어 두었을까? 그 일을 어떻게 글로 풀어볼 수는 없을까?


두서없는 이 글은 거기에서 출발했다. 나를 멈추게 했던 책 속의 구절과 버스에서 바라본 장면. 나를 멈칫하게 하는 순간들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그것을 부여잡다 보면 언젠간 멋진 글을 써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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