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글쓰기
연휴 내내 잡고 있던 책을 마침내 완독했다. 이제 과제물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그런데 내가 뭘 읽었더라, 머릿속이 하얘졌다.
20 만 년 전 지구상에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가 어찌어찌해서 오늘날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장장 500페이지 넘게 읽고서 남는 게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타고난 성, 임금 노동, 계급이라는 그물에 칭칭 감겨 평생을 살다가 죽기 마련이라는 다시 확인해야 별 좋을 것도 없는 소리를 읽느라 며칠 밤낮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다.
헬스장에서 운동 기구를 번갈아 가며 10~15kg의 무게를 팔과 다리로 들어 올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왜 나는 이 시각, 이렇게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고 있는 걸까. 수렵 채집인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와 이 광경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먹을 것을 자제하지 못해 늘어가는 체중을 탓하고 끊임없이 감량을 반복하는 사람들. 우후죽순 늘어나는 마라탕 전문점과 언제나 회원을 모집 중인 PT 전문샵. 한없이 맛있는 음식과 멋진 몸매를 탐하는 사람들. 이런 모순에 하나도 빠짐없이 해당하는 게 바로 나다.
이런저런 고민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도대체 산다는 게 뭘까.
10대에나 할 법한 질문을 중년의 나이에 하고 있다는 자괴감과 함께 절대로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 뒤를 잇는다.
그러고 보니 오늘 완독한 책의 마지막 챕터는 ‘의미에 대한 간절한 추구’이다. 저자가 의도했건 아니건, 두꺼운 책을 읽었건만 인류가 존재하는 의미를 찾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퍽 우울해졌다. 한 권의 책에서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 전체에서 간절하게 찾고자 했던 (그놈의) 의미. 도대체 이 모든 것의 의미는 무엇이더냐.
아침에 일어나 활동하려고 무언가를 입에 넣고, 건강과 삶의 활력을 찾겠다고 근력 운동과 수영 강습을 받았다. 배움에 대한 열정 혹은 집착과 남들보다 앞서고 싶다는 과시욕에 책을 꾸역꾸역 읽었다. 혼자 상처받는 게 싫어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기어코 생채기를 냈다. 습관처럼 알바몬에 일자리를 검색해보고 돈벌이를 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러다 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주일 가까이 쉰 글쓰기를 하려고 자리에 앉기까지 나의 일과이다.
그러니까 글쓰기가 싫어서 삶이니, 의미에 대한 간절한 추구이니 하는 소리를 한 거였다.
어찌 되었든 의자에 앉아 평소처럼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노트북 창에 ‘네이버 사전’과 빈 문서를 띄우는 데 성공했다.
안 쓰고 며칠을 편히 보내고 나니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는데 평소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썼다.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영원히 블로그에 머물게 되더라도 쓰긴 썼다. 내일은 조금 더 수월하게 자리에 앉게 되길 바라본다.
그런데 글은 왜 쓸까. 글쓰기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민은 내일 다시 하기로 하자. 어쩌면 내일은 그토록 추구하던 의미에 대한 명쾌한 해답과 같은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