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있으면 갑갑하고 우울해져

by 김모씨


집을 놔두고 엉뚱한 곳에서 존재감을 찾으려 했다.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것, 누군가의 일을 대신해 주는 것으로.

봉사도 아닌, 임금 노동도 아닌, 얄팍한 계산 뒤에 숨겨둔 의도는 참을 수 없이 가볍고 우습다. 그래서 더 슬프다.

몇 푼 아껴보겠다고, 몇 푼 벌어보겠다고. 일거양득이라고 포장하며 자신을 속여 보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결국엔 견딜 수 없어서 제 발로 걸어 나왔다. 아침에 풀었던 짐을 다시 싸, 양쪽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다. 이미 누군가의 존재감이 가득한 곳에서 나의 자리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사람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나는 설 곳이 없었다. 당황해서 숨고 싶어도 맘 편히 숨을 공간조차 없는 곳에서 나는 무엇을 바라며 견디려 했을까? 그렇게 해서 찾아질 존재감이 아닐 텐데, 나는 그걸 왜 몰랐을까?

내가 있다는 걸 들키기 싫어 듣고 싶은 음악을 듣지 못하고 누군가를 마주칠까 방안에만 머물러 있었다. 이십 년도 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나의 존재를 숨겨야 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맘껏 울지도 못하는 내 신세가 서글퍼서 한참을 소리죽여 울었다.

집으로 돌아와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하고 음악을 틀었다. (미처 다 가져오지 못한) 짐가방 두 개를 서둘러 정리하고 차가운 커피를 한 잔 타서 책상 앞에 앉았다.

누군가 나를 위해 작업 공간이라고 명명한 그곳이 갑갑하고 우울해서 견딜 수 없었다.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없고,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는 기름값에 차가워지는 날씨가 걱정된다. 어쩌면 난방비로 거액(?)의 지출을 하게 될 터, 아마도 속이 매우 쓰릴 것이다.


그래도 난 겨울을 이곳, 내 공간에서 보내리라 다짐했다. 존재감을 찾기 위해 누구를 챙기고 대신할 필요도 없는 곳, 내 몫의 가사 노동과 나만의 할 일이 있는 곳, 눈치 안 보고 맘껏 소리 내고 움직일 수 있는 곳. 나는 이곳이 좋다.

작가의 이전글카프카와 사무엘 베케트를 읽고 싶은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