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와 사무엘 베케트를 읽고 싶은 마음

주5일 글쓰기

by 김모씨

카프카와 사무엘 베케트를 읽고 싶은 마음


얼마 전 서점에 들러 책을 두 권 샀다. 둘 중 하나는 소위 ‘있어 보여서’ 고른 책이었다. 저자인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시인, 번역가, 시나리오 작가라는 폴 오스터의 작품을 읽은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제목과 띠지에 실린 몹시 작가스러운(?) 인상에 끌려 나도 모르게 구매를 결정했다.


이름도 생소한 시인들의 작품에 대한 평론이 이어져서 당황스러웠고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완독을 해서 뭐하나, 책을 그만 접어야 하나 고민도 되었다.

잠이 오지 않은 심심한 밤 할 일이 없어서 다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나마 익숙한 이름인 프란츠 카프카와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부터 책에 대한 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완독에 대한 집착은 접어두고 내 방식으로 두 작가의 작품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를 해석하고 남들이 찾지 못하는 의미를 부여하려고 읽는 재미를 놓친 시간도 적지 않다.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겠다고, 한 꼭지의 글을 매일 쓰겠다는 집착도 비슷하다. 그렇게 스스로 독서와 글쓰기를 의무로 만들며 읽기와 쓰기가 주는 재미를 잃어갔다.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를 읽고 진심으로 감동하거나 소름 돋아본 적이 없다. 방금 완독한 책이 무슨 이야기인지 한마디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엉터리 독서를 몇 년째, 매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하루의 끝에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는 공허감을 읽은 페이지 수나 글을 쓴 분량만큼 채우고 증명하고 싶은 마음, 남들이 읽은 만큼 혹은 더 많이 읽고 싶다는 허영심도 한몫했을 테다.


아직도 읽고 쓰기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이제는 의식적으로라도 줄여나가야겠다.

나는 결코 내가 읽은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책장에 꽂힌 책은 나를 증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이야기에, 문장 하나에 감동받아 잠 못 이루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이책 저책 마구잡이로 읽고 몰아 읽고 가끔은 한 자도 읽지 않아도 죄책감 느끼지 않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도서관에 들러 카프카와 사무엘 베케트의 책을 빌려야겠다.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미루지 않고 바로 읽는 즐거움도 다시 찾고 싶은 독서의 재미 중 하나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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