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글쓰기
2
결국 대학 오리엔테이션 전까지 원하는 만큼 체중을 감량했다. 45kg 이하를 유지하기 위해 거의 먹지 않고 지냈다. 술자리에는 빠짐없이 참여했지만 술만 마시고 안주는 좀처럼 손을 대지 않았다. 놀라운 자제력이었다.
이따금 식욕이 터지면 식구들이 모두 잠든 한밤 야식을 배달시켜 방에서 몰래 갖고 들어가 폭식을 했다. 치킨 한 마리를 금세 먹고 나서도 허기가 가시지 않으면 주방을 뒤져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입에 넣었다. 먹은 걸 모두 게워내는 일도 잦았다. 머지않아 부모님이 눈치챘지만 이미 혼자 힘으로는 폭식의 유혹을 참기 힘든 지경이었다.
그렇게 대학 시절과 사회생활 초반까지 날씬함을 넘어서 마른 몸매를 유지하는데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직장을 다니며 굶는 방법으로 체중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출퇴근을 하고, 자리에 앉아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열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일하는 중간중간 간식이나 커피도 참기 힘든 유혹이었다. 조금씩 몸무게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몸무게의 앞자리가 4에서 5로 변한 날, 조금 충격을 받긴 했지만 사는 게 바빠 체중 감량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인천에서 강남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오가느라 집에 돌아오면 잠자기 바빴다.
몇 군데 직장을 옮기고 장기간 백수로 지내며 몸무게에 대한 집착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인생 최저의 몸무게를 찍었다. 체중계 위에서 41이라는 숫자를 보고 뿌듯함을 느꼈다. 종일 머릿속에는 먹는 생각만 가득했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끝을 알 수 없는 욕망과 그걸 극단적으로 참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괴로워하느라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체중계 위에 적힌 숫자에 얽매여 지낸 시간이었다. 친구도, 애인도 직장을 구하는 일까지도 모두 통제력을 벗어난 것이었다.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건 체중밖에 없어 집착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원하던 일을 시작하며 해외에서 지내던 기간에도 숙소에 홀로 남은 시간 주체할 수 없이 몰아 먹는 습관은 계속되었다.
3
갑작스럽게 아이를 가지며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임신 중에도, 출산한 후에 육아를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해소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임신 후 20kg 가까이 체중이 늘었다. 주변 지인에게서 임신 기간 찐 살을 출산 후 100일 안에 빼지 못하면 영원히 ‘내 살’이 된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여자는 처녀건, 아줌마건 날씬해야 여자라는 말도 들었다.
신생아를 안고 돌아온 그 날부터 혼자만의 다이어트를 계속했다. 모유 수유 마저 포기하고 먹는 걸 줄였다.
아이를 키우며 일 년에 1kg씩 몸무게가 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엔 다이어트를 포기하고 생긴 대로 살기로 마음먹기도 했다. 날씬했을 때 입었던 옷들을 모두 정리하고 밴딩 소재의 바지와 뱃살을 가려주는 상의들로 옷장을 채워나갔다.
세상의 잣대에서 벗어나 더는 체중계에 갇혀 살지 않기로 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외모로 평가받는 일에, 자신에게 가혹하게 구는 일에 진력이 났다. 매일 체중을 확인하는 습관을 버리기로 했다. 평생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몇 개월 전부터 수영과 헬스를 시작하며 매일 몸무게를 확인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조금씩 체중이 줄자 욕심이 났다. 운동과 식이조절을 병행하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살이 빠지자 옷을 입은 태가 나아 보였다. 조금만 욕심을 부리면 예전처럼 마른 몸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 싶었다. 10kg 가까이 살을 뺐다. 얼굴이 퀭해 보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만족했다. 무식하게 굶다가 별이 보인 적도 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오늘 오전, 오랜만에 체중계 위에 올라섰다. 마지막으로 체중계 위에서 확인한 숫자와 같아서 안도했다. 1kg만 더 빼고 싶다는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좋아하는 바닐라라떼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다음 주부터 수영과 헬스를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여전히 몸무게라는 숫자에 갇혀 살고 있다. 언제나 마른 몸을 선호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윤여정 배우처럼 마른 노인이 되고 싶었다. 타고난 소식좌가 아니기에 매번 맛있는 음식 앞에서 욕망을 누르기 급급하다.
모처럼 지인과 저녁 만찬을 즐기기로 한 날이다. 가끔은 죄책감과 후회 없이, 살찔 걱정 따위 잊어버리고 음식을 즐기고 싶다. 오늘은 그럴 수 있을까? 폭식만은 하지 말자고, 대화와 함께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자고 마음을 다잡아본다.
앞으로 나의 체중은 또 어떻게 요동칠까. 언제쯤 몸무게라는 숫자에 의연해질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