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글쓰기
일본어 잘하는 애인을 만났다. 둘이서 여행하면 좋을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일본어를 배우겠다고 나섰다.
20여 년 전 배운 히라가나를 다시 외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회화 위주의 학습을 강조하는 선생님(이자 애인)과 달리 일단 쓸 줄 알아야 안심이 된다. 히라가나를 완전히 암기할 때까지 노트에 이른바 깜지를 적어나가듯, 몇 번이고 반복해 적었다.
간단한 인사말을 배울 때는 서로 하하 호호 웃으며 수업을 했다. 수업이라기보다는 데이트에 가까웠다.
본격적으로 문법이 시작되며 형태가 다른 형용사와 함께 진도가 나갈수록 암기해야 할 어휘가 늘어갔다. 새로운 단원을 배우면 다음 날은 진도를 나가는 대신 배운 걸 복습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어제 배운 새로운 문법과 어휘를 외우고 나면 엊그제 복습한 내용은 머릿속에서 자동 삭제되었다. 이래서 공부에는 때가 있다고 하는 걸까, 나이를 탓하기 시작했다. 책 표지에 적힌 ‘가장 쉬운’, ‘기초 첫걸음’이라는 문구에 좌절감만 더해갔다.
매일 30분만 투자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한 일본어 공부에 저녁 시간 대부분을 보냈다. 숙제를 하는 아이 옆에 나란히 앉아 꼬박 일본어 복습을 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돌아서면 까먹었다.
어느 날인가 문법 문제 풀이를 하다 이해가 가지 않아 질문을 하는 내게 선생님이 말했다.
“어제 똑같은 질문을 했었잖아요.”
어제도 같은 걸 묻고,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고 고개를 끄덕였을 테다. 겨우 하룻밤 새, 공부한 내용은 물론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동안 하고 싶은 공부만 하면서 편하게 살았다. 어휘 암기는 뛰어넘고 대충 문맥으로 뜻을 유추하며 원서를 읽었고 독서가 최고의 공부라 믿으며 누워서 편안하게 책을 읽었다. 둘 다 공부가 아닌, 또 다른 휴식의 형태였음을 일본어 공부를 하며 깨닫는다.
모든 공부는 힘이 들다.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해주어도, 아무리 알아보기 쉽게 만들어진 교재라도 배우는 입장에서는 암기할 것만 늘어가고, 두 개 배우면 하나 까먹는 지난한 과정의 연속일 뿐이다.
옆자리에 앉아 영어책을 더듬더듬 읽어 나가는 아이가 다르게 보인다.
방금 설명을 듣고도 문제를 틀리는 아이를 볼 때면 속으로 천불이 났다. 바보가 아닌가 의심한 적도 많았다.
이제 겨우 형용사의 부정형과 과거형을 배우며 두 개를 끊임없이 혼동하며, 여행이고 뭐고 일본어 공부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걸 느끼며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여행이야 일본어 잘하는 애인에게 맡기더라도 지금 시작한 기본 중의 기본 교재는 끝내고 싶다. ‘가장 쉬운’, ‘일본어 첫걸음’, ‘정말 쉽다’라고 쓰인 문구에 마음을 다잡아본다.
여기서 포기하면 망신이다. 나는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