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만찬

주5일 글쓰기

by 김모씨



글쓴이 : 김모씨


오전 근무를 마치면 기다리던 점심시간이다. 삼시 세끼 중 점심은 특별하다. 먹고 싶은 음식을 양껏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끼니이기 때문이다.

아침은 따뜻한 식혜나 아몬드 브리즈로 열량을 낮춘 커피 한잔으로 대충 때운다. 오전 내내 출출함을 느끼며 무언가 먹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꾹 참는다. 저녁에도 커피를 마시거나 채소, 과일로 식사를 대신하는 일이 잦다. 밥을 먹더라도 국물이나 양념이 강한 음식은 최대한 자제한다.


열두 시,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면 사무실을 정리하고 주방으로 향한다. 매일 먹는 메뉴는 뻔해도 냉장고를 열고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오트밀이나 쌀밥, 닭가슴살 스테이크와 견과류, 간장에 조려 짭짤한 콩장이나 드레싱이 뿌려진 샐러드를 넉넉하게 접시에 담아 방으로 향한다. 혼자만의 만찬을 앞에 두고 텔레비전이나 노트북을 켜고 볼만한 영상을 틀어놓고 식사를 즐긴다.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접시를 비워내면 배고픔이 사라짐과 동시에 찾아오는 포만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틀어놓은 영상을 조금 더 보다가 30분가량 낮잠을 청한다. 오전에 쌓인 피로를 풀고 오후에 활동할 에너지를 얻는 귀하디귀한 낮잠이다. 낮잠 후에는 독서와 글쓰기를 해두려 한다. 아이가 돌아온 저녁 시간에 글을 쓰거나 읽겠다고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읽고, 한 편의 글을 쓴 날은 오후가 여유롭다.


이렇듯 언뜻 보기에 평화롭고 단조로운 일상은, 사실 강박으로 돌아가는 부분이 크다. 조금이라도 스스로 정해놓은 루틴을 벗어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경로를 이탈한다.

아침에 씻지 않으면 종일 누워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핸드폰만 보며 하루를 보내는 식이다. 낮잠을 챙기지 못하면 오후 내내 피곤하다는 의식에 신경이 곤두선다. 글을 쓰지 않고 저녁을 맞으면 주변 사람들이 괴로울 정도로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다.


오늘 오전, 몰아치듯 일을 마무리하고 한숨 돌리려 지인과 자리에 앉았다. 열한 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호밀빵 한 조각을 뜯어 먹는 나를 발견한 지인이 지난주부터 냉장고에서 보관 중인 조각 케이크를 꺼내왔다. 체중 유지에도 강박을 느끼고 있어, 정해진 시간, 스스로가 허락한 음식만 먹어서 도무지 케이크를 먹을 틈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코코넛 가루가 뿌려진 파운드케이크는 적당히 달고 아주 맛이 좋았다. 한 조각을 지인과 나누어 맛있게 먹고 일어났는데 불편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이 정도 열량을 섭취했으니, 열두 시에 있을 혼자만의 만찬을 포기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맛있는 간식을 먹고 기분이 나빠진 이유를 지인에게 말했다. 너무 하찮아서,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괴상한 이유라서 밝히기 두렵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그나마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끼니, 나에게는 만찬으로 느껴지는 점심을 포기하게 되어서 케이크를 먹고 기분이 나빠졌다는 말을, 지인은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거듭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체념과 함께 둘 사이 놓인 커다란 장벽을 마주한 당혹감이 느껴졌다.


모든 게 강박 때문이다. 체중에 대한 강박, 먹는 시간과 종류에 대한 강박, 루틴에 대한 강박, 조금의 예외도 허용하지 못하는 그놈의 강박 때문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소중한 이와의 관계마저 망쳐버리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계획이고 루틴일까. 상처받은 주변 사람들이 떠나고 혼자만의 세계에서 종일 루틴과 강박을 해소하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왜 나는 소중한 것을 떠나보내지 못해 안달인 사람처럼 행동할까.


과연 나는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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