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글쓰기
글쓴이 : 김모씨
밤 운전은 자신 없다.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야가 어두우니 위험할 거라 단정 지은 것도 있고 사실, 밤에 나갈 일이 거의 없었다. 눈이나 비가 올 때도 운전을 피했다. 비슷하게 고속도로와 골목길, 번화가에서 차를 모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날이 좋은 날, 도로가 잘 정비되고 주차 공간이 넓은 신도시의 도서관이나 대형 마트 정도 운전하며 다녔다.
화순에서 농촌 유학을 결정하며 차를 가져오지 않기로 했다. 가파른 오르막과 급커브 구간이 많은 도로를 운전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이도 이견이 없었다. 둘 다 입을 모아‘엄마(너)는 이런 곳에서 절대 운전 못 한다.’라고 결론내렸다.
일주일에 한 번, 읍내에 장을 보러 나가야 했다. 한 시간에 한 번 다니는 버스를 타고 약 50분을 타면 시내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길엔 무거운 짐과 함께였고 장을 보고 돌아오면 한동안 드러누워 있어야 했다.
함께 유학 온 엄마의 차를 얻어타면 몸은 편해졌지만, 대신 신세를 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의 부담이 컸다. 혼자 다니는 게 익숙하기도 해서 지인과 거리를 두며 다시 혼자 버스를 타고 다녔다.
무거운 수영 가방을 들고 매일 버스를 타는 생활을 몇 개월 하고 차를 가져오기로 마음먹었다. 한동아 운전대를 잡지 않은 것도,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운전하는 것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운전 본능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화순에서 처음 운전하는 날, 긴장감보다 즐거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도시와 다르게 도로에 차가 많지 않아 여유가 있었다. 버스에서 보는 풍경과는 다른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차선도로라 몇 번인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뒤에 오는 차를 먼저 보내야 했는데, 그마저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읍까지 운전을 하고 차를 주차한 후, 버스를 타니 광주에 오가는 일도 훨씬 수월해졌다. 얼마 전 광주에서 글쓰기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읍에서 출발할 땐 괜찮았는데 운전을 하다 보니 급격하게 도로가 어두워졌다. 어두워진 시야에 당황한 찰나, 앞 유리에 성에가 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식은땀이 흘렀다. 비상등을 켠 채 도로 한가운데 차를 멈추고 창문을 여니, 성에가 없어지기는커녕 짙어져 더욱 당황했다. 에어컨과 히터 작동 버튼을 번갈아 누르니 성에가 사라져 겨우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집에 도착해 도로 한가운데서 앞이 보이지 않아 차를 멈춘 순간이 떠올려보니 아찔해졌다. 뒤에서 차가 오는 중이었다면, 그 차가 하필 커다란 트럭이었다면, 그 차가 멈추지 못해 충돌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며칠 후, 지인과 함께 차를 타고 어딘가 가고 있었다. 도로에서 식은땀이 흘렀던 경험을 이야기하니 지인이 몇 가지 버튼을 눌러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지금의 차를 운전해 온 지난 몇 년간 모르고 지낸 기능이었다.
어제 글쓰기 수업이 있었다. 밤운전은 아직도 엄두가 나지 않아 차를 읍에 밤새 주차해두고 버스로 집에 갈 작정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데 주차장 관리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서 차를 빼달라는 요구에 발길을 돌렸다.
시동을 걸고 조명 버튼과 지인이 알려준 앞 유리 히터 작동 버튼을 조작해보고 차를 출발했다. 어두운 산길에 들어서 상향 전조등을 켜고 히터를 틀었다. 시야가 확보되자 마음도 안정되었다. 좋아하는 음악 방송의 시그널 음악을 들으며 느긋하게 밤 운전을 즐겼다.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산길 운전에 이어, 야간 운전을 해냈다. 엄두가 나지 않던 고속도로와 광주 시내 운전도 언젠가는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내가 운전을 해서 집과 화순을 오간다니, 훌쩍 다른 도시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여행에 앞서 근교에 드라이브 일정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어쩌면, 바로 이번 주말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