끽연의 삶 1

주5일 글쓰기

by 김모씨



글쓴이 : 김모씨


담배를 처음 피운 건 열다섯 살 때다. 본격적으로 학업을 놓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무리를 지어 다니던 아이들은 모두 담배를 피웠다. 아이들은 새로 합류(?)하게 된 내게 자연스럽게 담배를 권했다. 불을 붙이고 피우는 방법도 모르면서 아닌 척 담배를 받아 물었다. 한 아이가 어설프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너 겉 담배구나?”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지 않고 입에 머금었다 뱉는걸 ‘겉 담배’라 부르고 그 반대를 ‘속 담배’라 부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할까 싶어 적당히 노는 티를 내고 싶었지만 바로 들통이 났다. 나이는 같지만, 친구들은 그런 내 모습을 귀여워하고 마음에 들어했다.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 나도 ‘속 담배’ 스타일로 따라 피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 헛구역질이 나고 어지럼증을 느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쓰다 보니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그렇게 끽연 생활이 시작되었다. 교복을 입고서도 담배를 살 수 있는 가게를 찾아내 하굣길에 들렀다. 공원 화장실이나 부모님이 종일 집을 비우는 친구네 집에 모여서 서너 명이 한데 모여 담배를 피웠다. 좁은 공간은 연기로 가득 찼고 손가락과 머리카락, 교복과 담배를 보관하는 가방 앞주머니에는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과감한 아이들은 학교 화장실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그러다 걸리면 몇 주 동안, 수업 대신 반성문을 쓰거나 청소를 하는 ‘근신’이라는 벌이 내려졌다.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정말 학교에서 참기 힘든 금단을 느껴서 담배를 입에 물었던 걸까. 혹시 일탈의 수단으로, 학교에서 대놓고 찍힌 자신의 위치를 만끽(?)하고 과시하려던 건 아닐까. 우습지만 당시엔 사고를 쳐서 근신을 받았다거나 전학을 가야 하는 상황을 일종의 무용담처럼 여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의 경우 친구들과 어울리며 담배를 피웠지만 담배의 맛을 즐겼던 건 아니다. 소속감을 느꼈던 것 같고 어른 흉내를 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이들은 담배를 피울 때 보통의 어른들 보다 침을 더 많이 뱉었다. 어른들이라면 하지 않을 연기로 도너츠 모양 만들기, 담배로 지진 상처 만들기와 같은 유치하고 위험한 장난을 하기도 했다. 이런 모든 행동들이 일종의 ‘보여주기’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줄기차게 담배를 피웠지만 돌아보건대, 금단 현상을 느낀 기억은 없다. 혼자 있을 때는 담배 생각이 간절하지 않았다. 친구들과는 밥을 먹고 나면 의식처럼 담배를 피웠다. 그걸 우리끼리 ‘식후땡’이라고 불렀다. 그걸 하지 않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무리 과식을 해도, 혼자 있을 땐 식후 담배 습관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흡연을 시작하고 지속한 이유 모두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였다. 열다섯에 시작한 끽연의 삶은 그렇게 담배 맛도 모른 채 몇 년간 지속되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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