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재미있는 얘기

주5일 글쓰기

by 김모씨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 무슨 예감에서인지 열어본 메신저를 통해서였지. 나하고 주고받는 농담과 이모티콘을 똑같이 보냈더라구. 심지어 나에게 보냈던 제과점 기프티콘을 그 사람에게 보내며 꼭 써달라고 당부하더라. 내가 대화방을 나가느라 사용하지 않은 채 남아있었거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분노를 느낀 이유는 따로 있었어.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날, 하필이면 그날 둘이 함께 볼 콘서트 티켓을 예매했던 거야. 타 도시 호텔에서 묵기로 한 것까지 알게 되었어. 나에겐 회사 일정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선 말이지.


하필이면 바로 옆에서 그 사람은 잠이 들어있었어. 심장이 빠르게 뛰고 얼굴이 달아올랐어. 잠시 후엔 눈물이 났어. 속았구나. 내가 깜빡 속은 거구나. 우린 아무것도 아니었고, 난 그저 놀아난 거구나. 애써 잠을 청했지만, 뜬눈으로 밤을 새웠어.

너무나도 통속적인,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상황을 일단 그저 모른 척하기로 했어. 따지고 묻기보다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 편을 택했지.

그리고 매일 메신저를 몰래 열어보았어. 나에게 숨기기 위해선지, 매일 채팅방을 나가서 딱 하루분만 남아있는 대화에 더 화가 치밀었어. 새로운 대화창엔 둘이 내년 여행을 계획하고 있더라. 더는 참기 힘들어 괜히 시비를 걸어 말다툼을 시작한 어느 날 밤에 빵 터뜨리고 말았어.

조금 당황하더니 사과를 하더라. 난 그에게 진심을 캐물으면서도 진짜 속마음을 말하진 못했어. 그 사람을 정리하고 너에게로 돌아가겠다고. 콘서트도 가지 않을 거라고, 너에게 중요한 그 행사에 꼭 참여하겠다는 말을 기다렸는데, 결국 그 말을 꺼내지도, 듣지도 못했어.

애매한 태도를 보였을 뿐, 그 사람은 나에게 결코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았어. 계속해서 ‘네가 상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어. 내가 본 건 뭐지. 왜 정리하려 하지 않는 걸까, 난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어.


그 이후로 정말 미친 지랄이 뭔지 그 사람에게 보여줬어.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그 사람에게 신용카드를 요구해 기름보일러를 가득 채웠어. 그리고는 다시 괜찮은 척 얼마간 지냈지. 그가 나를 바라보는 ‘미안해. 하지만 결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라는 눈빛이 정말 싫었어. 그는 나를 의식해서인지, 핸드폰을 숨기지 않았어. 일부러 테이블에 올려둔 것처럼 보였다니까. 그마저도 너무 싫었지. 아, 글 쓰면서 돌아보니 정말 욕이 나오려 하네.


미친 지랄의 절정을 보여줄 때가 임박한 거야. 나는 그와 내가 나눈 대화방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찾아 검색된 결과를 모두 캡쳐했어. 사랑한다. 미치도록 사랑한다. 영원히 함께하자. 뭐 대충 이런 대화들이야. 내가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우리가 나눈 대화도 함께 보냈어. ‘이건 사랑이 아니야.’, ‘나에게 고마운 사람이야.’ 어쩌구저쩌구. 그런 시덥지않은 소리들이었지. 캡처한 대화창 수십 개와 함께 찍은 사진을 모두 그 사람의 오랜 연인에게 전송했어. 나의 이름과 얼굴이 드러난 프로필을 감추지 않고서. 그리고 그 사람이 내가 전송한 한 무더기의 메시지를 확인할 때까지 줄기차게 전화를 걸었어.


드디어 그녀가 메시지를 확인하고 잠시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어. 목소리가 참담하더라구. 내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데. 사실, 나도 몰랐어. 나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은. 덧붙여 그가 말하기를, 다 끝났데.


조금도 미안한 기색 없이, 너랑 나눈 대화도 다 녹음해뒀다. 내가 망가지더라도 상관없다, 너도 똑같이 망가트릴거다, 네까짓 게 뭔데 날 힘들게 하냐, 등등 구질구질한 말들이자 동시에 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다 쏟아내었어. 이미 끝장날 대로 난 거,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어. 나에게 중요한 날, 하필이면 그날 거짓말을 하고 ‘임창정 콘서트’를 가야 했냐고, 결정적으로 그것 때문에 뚜껑이 열린 거라고. 왜 정리하지 않았냐고. 끝까지 ‘네가 생각하는 그런게 아닌’ 사람이랑 왜 뽀뽀하는 사진을 버젓이 저장해 두었냐고.


그 후에 우리는 어떤 모습이었는 줄 알아? 난 더 최악으로 치달았고, 그 사람은 여전히 아련한 눈길을 보냈어. 정말 최악은 아직 우리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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