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거 없는 날

주5일 글쓰기

by 김모씨


대신 이것저것에 관해


1.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어제 종일 심통이 났다. 씻지도 않고 종일 드러누워 책 읽다 잠들고, 깨서 다시 책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런 나를 보다 못한 지인이 외출 후 돌아오는 길에 블루베리 치즈케이크를 사왔다. 당장 먹고 싶었지만 자존심상 내일 먹겠다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드디어 날이 밝고, 고대하던 케이크 상자를 열었다. 아메리카노도 진작 준비해뒀다. 놀랍도록 달고 진한 맛에 행복했다. 살이고 뭐고, 꽤 큰 케이크를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어서인지 낮에 먹은 케이크가 생각난다. 정직한 몸뚱이 같으니라고.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난다.


2.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란 책


글쓰기 수업 선생님에게 소개받은 메일 구독 서비스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며칠 전 받은 메일에 실린, 최근 읽은 책을 소개하는 글을 통해 알게 된 책이다. 제목부터 간략하게 소개된 내용까지, 당장 손에 잡고 읽고픈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한 번 읽으면 다시는 읽지 않고 책장에 영원히 간직될 책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도대체 이런 책은 사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망설이다가 결제를 마쳤다. 그리고 다시 결제를 취소했다. 희망 도서를 신청하러 들어간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올해 마감된 희망 도서 신청 서비스는 2023년 1월 18일부터 재개된다는 공지를 확인했다. 그러니까 족히 한 달은 기다려야 저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해볼 수 있는 거다. 나는 지금 당장 읽고 싶은데 말이다.


3. 큐브


아들이 다이소에서 큐브를 샀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다 안되니, 쉽게 포기해버렸다. 한 면만 맞추어도 된다고 방법을 알려줘도 도통 듣는 척도 안 했다. 결국 아들이 찾은 방법은 큐브를 죄다 뜯어내서 새로 조립하는 것이었다. 여섯 개의 면이 완벽하게 맞춰진 큐브를 보며 아들은 뿌듯해했다. 정말, 진심으로 넌 그게 뿌듯하냐고 묻는 대신 “장~하다. 내 아들.”이라며 영혼 없는 칭찬을 해주었다. 문제는 완성된 큐브를 섞고,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한다는 거다. 바닥에 늘어진 큐브 조각과 그걸 맞추는 과정에서 잔해들이 튕겨 나오는 소리를 듣는 게 고역이다. 당장 재활용 플라스틱 수거함에 넣어버리고 싶지만, 하루 중, 아들의 몇 되지 않는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인 것 같아 망설여진다.


4. 눈밭에서 뒹군 일


꼭 기록해야만 할 것 같다. 며칠 전 그 사건을. 토요일 늦은 밤. 펑펑 눈이 온 그날 밤이었다. 술을 먹고 기분이 좋아지다가 이성을 잃은 나는 혼자 비틀대다 약간의 경사가 진 돌덩이들을 쌓아 만든 축대에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발을 헛디딘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몸이 몇 바퀴인가 굴렀다. 차가운 맨홀에 얼굴이 닿은 순간, 아픈 것보다 추워서 얼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누워있다 겨우 몸을 일으키고 살겠다는 의지로 한발짝 씩 움직여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양쪽 무릎과 한쪽 팔과 엉덩이에는 살벌하게 멍과 상처가 났다. 그래도 기쁜 마음이 컸다. 살아남아서, 어디 안 부러져서, 얼굴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다음 날 절뚝이며 다시 사고 현장(?)을 확인하러 나갔다. 저 가파른 곳에서 구르고도 살아남은 자신이 기특하게 여겨졌다. 새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타올랐다.

어딘가 앞뒤가 안 맞기는 하다. 술 먹고 넘어져서 시퍼렇게 멍이 든 게 제2의 삶을 찾는 과정까지 이어지다니. 난 정말 비약이 심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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