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 영화랑 소설 이야기

멋진 하루 &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by 김모씨

영화 <멋진 하루>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일 년 전 헤어진 애인을 찾아가 꿔준 삼백오십 만원을 돌려받기 위해 하루를 함께 보내는 이야기다. 하나도 멋질 리 없는 내용이라 궁금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전도연과 하정우라 보게 되었다.


1. 사랑에 빠지면 사라지는 매력에 관하여

하정우가 연기한 병운은 환장할 매력의 소유자이다. 나라도 혼자 있는데 병운이가 말 걸어주면 바로 넘어갈 것 같다. 병운이는 복잡한 캐릭터인데, 원래 잘 사는 집안의 자제에게서만 흐르는 삶의 여유와 그런 집안의 재산을 모두 말아먹은 현실 감각 없음이 혼재된 이 남자는 정말 여러모로 사람 미치게 만든다.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에 빠지는 단계에서 그는 어마어마하게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그런 매력은 정작 두 사람이 사랑을 시작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극복하기 힘든 단점으로 변한다.

영화를 보며 비슷한 기억이 소환되었다. (잠시 아련해짐)

2. 누군가와 온전한 하루를 보낸다면

희수는 빌려준 돈을 받으려 병운과 하루를 동행하게 된다. 병운은 지인들은 찾아다니며 한 푼 두 푼 돈을 받아 액수를 채워나간다. 전 남친이 돈을 구걸(?)하러 다니는 걸 보는 여자의 입장이 유쾌할 리 없다. 아마도 내가 한때 사랑한 남자가 쓰레기였다는 걸 확인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돈을 요구하는 병운의 모습에서 어떤 진정성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사실, 병운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그를 외면하지 않고 얼마간 돈을 내어준다는 것은 그의 인간미를 반증하는 면이기도 하다.

친구와 애인이 아닌 누군가와 하루를 함께 보낸다면,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될까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멋지게 포장된 모습이 아닌, 생활인(?)으로서 때로는 비겁해지기도 하고 민망한 상황을 대처하는 조금은 짠한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영화를 본 후 누구라도 조금은 위로해주고 싶은 구석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알아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최근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란 책을 읽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작품이 아닌 콘텐츠로, 감상이 아닌 소비를 하는 요즘 사람들에 관한 책이다. 영화를 보기 너무 쉬워지고, 봐야 할 것은 많아지고, 자기만의 해석을 하는 데 힘을 쓰고 싶지 않아(혹은 그럴 힘이 없어) 사람들은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른다고 한다.

<멋진 하루>에 희수가 병운과 헤어지고 홀로 걷는 장면이 나온다. 대사는 없지만, 배우의 걸음걸이와 표정을 보며 여러 감정이 스침을 짐작하게 하고,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먹먹해지다 꽤 오래 여운이 남는다.

그 장면을 빨리 감기로 넘겨본다면 어떨까. <멋진 하루>는 그저 채무자와 채권자의 이야기로만 남지 않을까. 영화를 볼 여유를 내지 못하고, 요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할지언정 영화는 원래 속도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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