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bor of Small mind
2023년 3월 첫 주말, 드디어 쿠팡 알바를 했다. ‘드디어’라는 수식어가 붙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처음 쿠팡 알바에 지원한 건 재작년 겨울의 일이다. 주말에 집에서 뒹굴거리는 대신 8시간 노동을 하고 약 8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니. 단순하게 계산해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네 번의 노동으로 30만원만 벌어 한 달간 읽고 싶은 책 사고 커피 마시며 용돈으로 쓸 계획이었다.맞벌이에 나서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생활비를 쪼개서 책을 사고 서점이나 카페를 다니며 쓰는 돈과 유류비로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고 내 용돈은 스스로 벌어 당당하게 쓰고 싶다는 바람은 오래 간직해오던 것이었다.
왜 하필 쿠팡 알바인가하면, 당시 읽었던 책과 관련이 있다. <뭐든 다 배달합니다>는 기자, 편집자로 일하던 저자가 퇴사 후 배달과 물류센터, 대리운전 등 플랫폼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200여일을 보낸 경험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이 나 역시 종일 어딘가 메여서 일하기엔 여건이 허락되지 않았고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을 투자해 용돈벌이를 하고 싶던 참이어서 이 책을 마치 ‘쿠팡 알바 설명서’처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항상 모집 공고가 뜨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에 몇 번인가 지원했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던 어느 주말, 드디어 채용 확정 문자를 받았다. 애플리케이션으로 계약서를 쓴 후 집 근처 셔틀 노선을 확인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후 새벽 6시가 되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도착 시간이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된 걸 깨달았다. 정류장을 착각하고 엉뚱한 곳에서 버스를 기다린 것이다. 그 후로 쿠팡 지원은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아마도 나의 신상정보에 ‘무단결근’이라는 이력이 남아 자동으로 걸러지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한동안 쿠팡 알바를 잊고 지내다 농촌 유학 2년 차를 맞던 봄, 인근 대도시 쿠팡 물류 센터에 다시 지원하게 되었다. 설마 몇 년 전, 그것도 타 도시의 기록이 아직도 남았을까, 호기심 반 기대감 반으로 지원한 일요일 오전 근무 타임에 ‘드디어’ 채용 확정 문자를 받았다. 이번 기회도 날려버리면 쿠팡 알바는 영영 물건너 갈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30분이나 앞서 근무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셔틀을 운행하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도착한 휴게 공간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한쪽 소파에서는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형광등 불빛이나 거기 모인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테이블에 모여 앉은 사람은 편의점 도시락을 데워먹거나 자판기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이곳의 노동이 처음인 듯 보이는 청년을 따라 쭈뻣대며 ‘계약서 작성’이라 적힌 종이가 붙은 테이블 쪽으로 다가갔다. 서류와 모나미 펜이 펼쳐져 있는 테이블에서도 식사가 진행 중이었다. 노동은 밥심이라며 이른 아침 밥 한공기를 챙겨 먹은 것도 모자라 기운이 떨어질 때 먹겠다며 견과류와 두유까지 한 짐을 싸왔는데, 준비가 조금 과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출근 절차를 마치고 준비해온 작업용 장갑을 쥐고 물류센터 안으로 들어섰다. 해야 할 작업은 단순했다. 컨테이너 벨트를 타고 내려오는 택배물을 잽싸게 낚아채 운송장에 붙은 번호를 보고 구분하는 일이었다.
현관문 앞에 놓여있던 쿠팡 택배를 직접 분류하다니, 처음엔 신기하기도 했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비교적 가볍고 작은 물건만 뜨문뜨문 내려와 ‘쿠팡 알바, 별거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편안하고 손발만 조금 움직이는 노동을 이어가던 때 컨테이너에서 물건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미처 혼자 수습하지 못해 택배물을 가득 실은 플라스틱 상자가 컨테이너 끝에서 추락해 내용물이 바닥에 흩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어 수습을 위해서는 그저 손과 발을 조금 더 신속하게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작은 고비를 넘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무겁거나 부피가 큰 물건들이 떠밀려오기 시작했다. 신선 식품을 담은 이른바 프레시백에 담긴 물건은 부피는 컸으나 비교적 가벼웠지만 문제는 택배물을 담는 철제 선반(명칭을 모른다)에 점점 공간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박스를 머리 위로 올려 던져서 빈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공략했던 공간에 박스가 절묘하게 들어갈 때 어떤 희열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커다란 박스의 행렬은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도대체 얼마만큼 더 물건을 실어야 하는지 신선 식품이 들어있는 것이 분명한 프레시백을 세로로 쌓아도 되는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곁눈질로 보니 다른 작업라인에서도 식품 상자를 가로세로 구분 없이 마구 쌓고 있는 걸 보고 한쪽으로 쏠릴 내용물 걱정은 잊은 채 나도 빈틈에 마구잡이로 끼워 넣는 걸 반복했다.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컨테이너 벨트에 남은 물건을 없애는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한동안 박스를 던지다가 입이 바짝 말라오고 ‘죽을 것 같다’라는 말이 맴돌 무렵 어디선가 나타난 직원들이 빈 철제 선반으로 교환해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컨테이너 벨트에 실려 내려오는 물건들의 행렬도 속도를 늦춰가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딱 두 시간 지나있었다. 아. 이 짓을 앞으로 두 시간 더 해야하다니.
교체된 철제 선반을 보고 처음부터 물건을 차곡차곡 잘 쌓아서 아까처럼 당황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한 번 해봤다고 요령이 생겨 공간을 아껴가며 물건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한국인은 정말인지 너무나 성실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누구에게도 민폐만은 끼쳐서는 안된다. 돈을 받으면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몫을 해내야 한다는 건 어떤 수업 시간에서도 배운 적 없건만 DNA에 각인 된 듯 선반 앞에서 이번엔 제대로 테트리스를 해보겠다며 전열을 불태우고 있는 나의 처지가 웃기고 짠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전 두 시간 동안 일하며 쌓은 노하우를 펼쳐 보이려던 바로 그때, 컨테이너 라인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번 일은 내가 물건을 싣던 빈 철제 선반을 물류센터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바퀴가 달려있건만 힘이 부처 이동하며 여기저기 부딪치기 일수였다. 요령보다는 기본적으로 힘이 필요한 일이라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려는 기색이 없었다.
철제 선반들을 한쪽으로 모두 옮기고 지시를 내리는 직원들을 보니 더이상 시킬 일이 없는 눈치였다. 그 중 유도리 있어 보이는 직원이 원래 작업하던 곳에서 대기하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그 말이 나에게는 ‘당장 할 일이 없으니 잠시 쉬어도 좋다’는 말로 직역되어 들렸다. 그틈을 타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가 방금까지 열심히 물건을 쌓아 올리던 컨테이너 벨트로 돌아와 쪼그리고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근무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핸드폰을 확인하고 걸터앉아 작업화를 발사진과 컨테이너 벨트를 배경으로 장갑을 끼고 브이를 취한 손모양을 기념 사진으로 남겼다. 시계를 보니 퇴근까지 20분 남짓 시간이 남아있었다.
이대로 쭈욱 쉬다 집에 가는 건가, 혹시 작업량이 없다고 조기 퇴근을 시켜주는 건 아닐까 헛된 기대에 빠져있을 때쯤 새로운 작업 지시가 떨어졌다. 결국 정해진 퇴근 시간을 2분 남겨두고 작업장을 떠날 수 있었다.
처음 들어선 휴게 공간으로 돌아와서 끝인사라도 나누게 되나 싶었지만, 그냥 알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분위기였다. 정수기에서 냉수를 두 컵 연거푸 마시고 나도 주차장으로 향하려는 데 자판기의 저렴한 음료 가격이 눈에 들어왔다. 종류에 관계없이 음료는 모두 300원이었다. 주머니에 가진 돈이 없어 굳이 주차해둔 차에 들러 동전을 챙겨 휴게 공간으로 돌아와 자양강장제 두 병을 사서 나왔다..
그렇게 몇 년에 걸쳐 도전한 나의 첫 번째 쿠팡 알바를 마쳤다. 내일 몸살이 오면 어쩌나, 이렇게 고되게 번 돈이 아까워서 이 돈으로는 치킨은 고사하고 맥주도 사 먹기 힘들겠다. 등등의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쿠팡 알바를 채용하는 오픈채팅방에서는 오늘도 다음 근무자 신청을 받는 메시지가 활발하게 오간다. 평일 중 하루 더 알바를 뛸지 아니면 몸도 마음도 편안하고 안락한 하루를 보낼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거 왜 하냐’고 심지어 ‘그거 해서 얼마 버냐고’ 걱정하며 만류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 돈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지만, 나는 그저 내 용돈을 내 힘으로 벌고 싶을 뿐이고 용돈은 언제나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변이 없는 한 주말 하루는 쿠팡 알바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