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총회

소심이의 사회생활

by 김모씨

어제 아이 학교에서 공개수업과 학부모 총회가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가 4학년이 되어서야 처음 가 본 모임이었다.

학부모가 공식적으로 학교에서 모이는 총회를 앞두고 어떤 가방과 복장으로 참석해야한다는 직접 확인이 어려운 기사가 포털에 뜨기 시작했다. 각종 명품 가방을 볼 수 있다는 다분히 자극적인 기사가 메인에 걸리고 댓글 창에는 기사가 과장되었다거나 현실이 그렇다는 양쪽의 의견이 팽팽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전교생이 스물두 명, 한 반에 다섯 명인 작은 시골 학교의 학부형인 나 역시 총회를 앞두고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명품백은 들지 못할지언정, 평소보다 깔끔하고 격식을 차린 차림으로 참관 수업과 총회에 참석하고 싶었다.


그렇게 새로 장만한 옷을 차려입고 총회에 참석했다. 수업 시간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아이는 엄마의 존재를 알아차린 게 분명했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얌전히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 별난 행동을 하거나 제 차례에 답을 말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조마조마했는데 아이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려는데 누군가 00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다가왔다. 아이의 아빠로 보이는 이는 나와 함께 다른 친구의 엄마를 찾고 있었다.

경험상 친하건 친하지 않건, 학부모로부터 연락을 받거나 찾아오는 경우는 대게 좋은 일로 비롯되지 않는다.

처음 본 반 친구의 아빠를 직접 대면한 자리가 불편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나마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나와 함께 대화 요청(?)을 받은 엄마와 나란히 선 채, 아이 아빠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역시나 듣기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친구의 위험한 행동으로 자신의 아이가 고통을 느꼈다는 말에 등줄기에서 땀이 흘렀다.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는 학부모에게 거듭 사과를 하고 난 후 총회에 참석하러 자리를 이동했다.


총회는 꽤나 지루했다. 국민의례를 한 후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이어지고 나서 한 줄로 나란히 선 선생님들이 소개되면 학부모들은 박수를 쳤다. 연간 일정표를 확인하며 언제 어디로 휴가를 가면 좋겠다 계획하는 게 유일한 생각할 거리였다. 교사들이 준비한 순서가 끝나고 학부모 임원 선출 시간이 다가왔다.


아침에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러 집을 나설 때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교감 선생님이라고 밝힌 전화의 주인공은 학부모 총회에서 ‘감사’ 자리가 공석이라며 별로 할 일이 없다는 말과 함께 직책을 맡아줄 것을 권했다. 그 어느 자리에서도 임원이 되어본 적 없던 터라 조금 고민했지만, “별로 할 일이 없다는” 말만 믿고 덥석 수락하고는 이 상황이 우스워 운전을 하며 혼자 웃었다. 내가 학부모 위원회 감사라니. 부탁할 사람도 진짜 없었나 보다, 싶었다.

회장, 부회장, 감사 이렇게 세 가지 직책에 딱 한 명씩 희망을 해서 무투표 당선이 되었다는 주임 교사의 말에 이어 학부모회장이 소개되었다. 아무리 감투뿐인 감사직이라도 이런저런 일로 마주칠 게 분명한 ‘학부모회장’은 누굴까 궁금하던 마음은 불안한 예감과 함께 ‘혹시, 설마, 아닐 거야’로 이어졌다.

학부모회장은 방금 교실에서 마주했던, 우리 아들의 과격한 행동으로 인해 처음 대면하게 된 바로 그 학부모였다. 당선을 축하하는 박수를 치고 총회가 끝남과 동시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학교를 나섰다.

총회 날, 아침부터 벌어진 에피소드로 할 말이 많아진 난 친구를 불러내 읍내로 향했다. 이미 점심을 먹은 친구에게 ‘감사 턱’을 내겠다며 맛집에 가서 기어코 대기표를 뽑았다.

남은 음식을 포장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오전에 감사직을 권했던 교감선생님은 학부모회장을 필두로 이미 부회장직과 감사직까지 조직을 해왔다는 말을 전했다. 그렇게 감사직 권유와 수락은 없던 일이 되어버린 거다. 통화 내용을 얼추 듣고 웃음을 참고 있던 친구를 보고 “감사 턱까지 냈는데, 세 시간 만에 감사직 짤렸”다며 투정을 부렸다.

직접 참여해본 학부모 총회에는 명품백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점심 모임도 없었다. 난생처음 맡게 된 직책에 조금 들떴고, 아이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다 난데없는 학부모과의 만남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학부모 위원회에서 불편하게 앉아 있을 내 모습을 떠올려보다 몇 시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학부모와는 가급적 거리를 두는 게 좋다는 교훈을 남기고 마무리된 학부모 총회. 그래도 나름 재밌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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