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하기 좋은 나이

육아일기

by 김모씨


요즘 아들이 부쩍 멋을 부린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등교 전 세수하고 거울 앞에 서서 로션을 바르거나 새 잠바를 잘 입고 다니는 정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수를 제대로 하지 않아 건조한 얼굴에 홍조나 버짐 같은 게 피어있었는데 로션만 발라도 깔끔하고 한결 잘 생겨 보인다.


얼마 전 아이와 드라마를 보던 중 남고생이 좋아하는 반 친구의 머리끈이 끊어지는 것을 눈여겨보고 새 머리끈을 사는 장면이 나왔다. 옆에 누워 함께 감상 중이던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고백하려나 보다. 여자친구에게 고백할 때는 저 형이 하듯이 평소에 잘 관찰했다가 필요한 물건을 선물해주는 게 좋아. 여자친구가 그 마음이 고마워서 아마 감동할 걸.”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생겨서 선물을 사야 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용돈을 넉넉하게 챙겨주겠다 하니 아이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아이와 첫사랑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엄마의 첫사랑을 묻는 아이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를 좋아했다. 그 애도 내가 싫지 않았던 것 같다. 둘이 마음이 맞는다고 딱히 뭘 한 건 없지만 반 아이들도 다 알고 있는 공식적인 커플 같은 게 되어있었다. 그 아이는 축구를 잘하고 공부는 좀 못하는 편이었다. 수업 태도가 좋지 않아서 담임 선생님은 교탁과 칠판 사이에 책상을 두고 그 애를 앉게 했다.

언젠가 전교생이 실내 수영장에 간 적이 있었다. 좋아하는 남자애와 물놀이를 할 생각에 기대에 차 있는 나와 달리 그 애는 평소와 달리 어쩐지 머뭇대며 한구석에 물러나 있고 물속에도 좀처럼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요즘과 같은 레쉬가드를 입지 않아 남자아이들의 상반신이 노출되어있었다. 한쪽 손으로 계속 목부터 가슴 언저리를 가리고 서 있는 그 애가 나도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수영장에 뛰어든 그 아이의 목에서 심장 부위까지 수술 흉터 같은 게 남아있었다. 알고 보니 어렸을 때 심장 수술을 받은 후 생긴 자국이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아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엄마의 개구쟁이 첫사랑에게 심장 수술 흉터가 남았다니, 많은 매체를 통해 통속적인 서사 구조를 파악했을 아들이 섣부른 오해를 하기 전에 얼른 결론부터 말했다.

“그냥 흉만 남은 거야. 안 죽었어. 고등학교 때 다시 만나보니까 여전히 잘 생기고 축구도 잘하더라. 근데 엄마랑 잘 안됐어.”


그랬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헤어진 첫사랑은 고등학교 시절 ‘다모임’이라는 당시 유행하던 동창생 찾는 커뮤니티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시 만난 그 애는 남자다운데다 멋지고 세련되어졌다. 다시 재회한 첫사랑에게 다시 고백하냐 마냐 혼자 일인극을 찍던 중에 나의 첫사랑은 내 친구 중 가장 이쁘고 애교가 많은 아이와 사귀게 되었다.


삼십 년 전에도 같은 반 이성친구와 썸을 탔었는데, 아들이 당장 여자친구가 생겨 기념일을 챙긴다 해도 별로 빠르지 않은 일일 테다.

얼마전 아이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전교생 중에 가장 예쁘다는 여자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오늘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체험 수업에 보조로 참여하게 되었다. 수업이 진행되던 중 틈틈이, 어쩌면 아들이 짝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를 여자애를 유심히 쳐다봤다.

농촌 아이보다 더 농촌 아이 다운 순박한 인상의 아들하고는 썩 어울리지 않은 예쁘고 새침한 인상의 여자아이였다.


따뜻한 봄날 아들도 생애 첫 썸이라는 걸 타보며 하루하루 설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그러다 상처도 받고 흘려 듣던 노래 가사가 가슴에 박히는 경험을 해보길.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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