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둔 일

by 김모씨

퇴근 후 가뿐한 마음으로 방에 들어서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입구에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어수선한 여러 켤레의 신발 중 가장 지저분한 신발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딱 한 개뿐인 아이의 운동화는 흙이 잔뜩 묻은 채 며칠째 방치 중이다.

지난주 어느 날 운동화가 엉망이 된 채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비가 온 후 텃밭 수업에 참여하느라 엉망이 된 운동화를 보고 얼른 벗으라고, 당장 빨아줄 것처럼 말한 지 어느덧 열흘이 지났다.

처음 하루 이틀은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내린다는 핑계였다. 운동화는 햇볕에 바짝 말라야 냄새가 안 난다고 하교 후 여전히 더러운 자신의 운동화를 보고 선 아이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며칠 비를 뿌리다 말고 화창한 봄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데 운동화는 여전히 그대로다.

방에 들어서며 신발을 확인한 아이는 언제부터인지 운동화에 대해 묻지 않고 말없이 크록스를 신고 등교를 한다.


오늘 밤엔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운동화를 꼭 빨아야겠다고 마음먹고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으니 선반에 놓인 한 권이 시선을 붙잡는다. 격월로 발행하는 문학잡지를 사서 두 달이 다 되도록 표지도 펼쳐보지 않았다.

표지 모델로 선 작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인터뷰가 커버스토리로 실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기쁜 마음으로 잡지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던 게 엊그제 같다.

화순으로 돌아오는 KTX에서 읽겠다고, 혼자 카페에 앉아 읽겠다고 무거운 책을 여러 차례 들고만 다니다 결국 책상 한구석에 처박아 둔 채다. 나는 저걸, 도대체 언제 읽게 될까?


벌써 3월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있다. 올해 초 아버지의 편지에 감동을 받은 후,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 한 달에 한 번 친정집으로 편지를 써 보내리라 작정하고 SNS 프로필에 다짐을 적어 놓은 기억이 난다.

계획을 지키려면 오늘 밤, 늦어도 내일 우체국이 문을 닫을 때까지 손편지를 써야 한다.


오늘 밤 할 일이 아주 많겠다. 운동화도 빨아 널어야 하고, 잡지도 열어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상에 앉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목요일 밤엔 꼭 맥주를 마시고 싶어 검색해보니 읍내에 ‘엄마 손’으로 운동화를 세탁해 준 다는 빨래방이 나왔다. 잡지는 꼭 오늘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구입하고 생전 펼쳐보지도 않던 책이 느닷없이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읽고자 하는 마음이 솟구칠 때를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는? 내일 우체국이 문 닫기 전까지만 쓰면 되니, 내일 도서관 봉사하러 가서 한차례 책장 정리를 끝내고, 잠깐 틈을 내서 꼭 쓸 거다.


결국 미뤄 둔 일을 하나도 끝내지 못했지만, 계획을 짰다는 데 의미를 두며 몹시도 피곤한 목요일 밤, 오늘은 시원한 맥주나 한 캔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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