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이벤트가 있을 수는 없는 거겠지

by 김모씨

사는 게 재미없다. 아침에 눈 뜨면 하는 생각. 원서 읽어야지. 졸음 가득한 눈을 부릅떠 보지만 해석도 되지 않은 채 그냥 글자만 읽는다. 2주째 반밖에 읽지 못한 <모비딕>도 마찬가지다. 영어도 아니건만, 그저 글자만 읽으며 힘겹게 한 장 한 장 넘길 뿐이다.

도서관에서 일을 시작한다고, 주말엔 빵집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신났던 것 같은데 얼마 가지 못하고 지루한 반복, 하나의 의무 후에 이어지는 또 다른 의무에 지쳐가는 요즘이다.

매일 이벤트가 있을 수는 없겠지. 매일이 어제와 다른 경험으로 채워질 수는 없는 거겠지.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하는 사람,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정성스럽게 사는 사람이 부럽다. 그것도 능력이다. 똑같은 하루를 잘 사는 능력. 나는 능력 부족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하루의 낙이 9시 25분에 시작하는 시트콤을 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시트콤이 끝난 후엔 허무하고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

요즘 내가 사는 낙은 뭐가 있을까. 일하고 돈이 입금되면 기분이 잠깐 좋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딱히 본방 사수하는 프로그램도 없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읽는 재미에 빠져본 것도 오래전 일이다.


적적하고 허무한 기분을 잊기 위해 가장 쉬운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건 바로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다. 이번 달 이미 한 차례 옷을 사 입었건만, 머릿속으로는 ‘안 되는데.’라고 반복해서 외쳤지만 손가락은 의지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움직여 결제를 마치고 말았다. 새 옷을 입고 매일 똑같은 장소에 가서 역시 같은 일을 반복할 텐데 옷은 굳이 왜 사는 걸까.


아. 사는 게 재미없다. 허무하다. 공허하다. 모든 게 지지부진이라 마음에 안 든다. 독서도, 글쓰기도 지지부진이다. 나는 사실 책 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독서는 의무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더욱더 공허해서 붙잡고 있는 것 뿐이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 내 마음 편하자고, 덜 공허하고 싶어서 치는 발버둥일 뿐이다. 누가 내 글을 읽을 것인가. 내가 과연 글로 돈벌이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별로 가망성이 없어 보인다.


해서는 안 되는 말 같아서 꾹 참고 있던 말들이다. 입 밖에 내면 진짜가 될까봐. 내 삶이 허무하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될 테니 아닌 척, 속으로 삭이던 생각들을 글로 마구 뱉어내고 말았다.


그래. 내 삶은 너무 공허해.


내일은 오랜만에 자유 수영가서 실컷 하고 싶은 영법을 연습하다 와야지. 점심엔 고대하던 냉면을 먹을 거다. 참, 자기 전에는 오늘 빌려온 김멜라 소설집을 재미있게 읽다 자야겠다. 내일은 벨벳처럼 어여쁘고 쫀득한 우유 폼 만들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새로 산 옷은 언제 도착하려나. 날씨가 빨리 따뜻해졌으면. 가벼운 옷을 입고 싸돌아다니게. 다음 주엔 꼭 독서 모임에 다녀와야지. 날씨가 좋아서 새 옷을 입고 갔으면 좋겠다. 빨리 글을 마무리하고 수다 떨며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와야지. 그리고 담배도 끊어야지.


공허한 삶이건만 할 일은 이렇게도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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