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로> 무한 반복 생활을 이어가다 피폐해진 자신을 발견하곤, 영화를 다시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선택한 첫 번째 영화 <타르>, 아. 이것은 진정 현명한 선택이었다.
1. '젊음'이라는 권력
영화속에서 타르는 '늙어가는 일'에 대해 극도로 두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그 자신이 '젊음'이 가진 권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그는 젊음과 매력으로 인생의 기회들을 잡아간 듯하다. 물론, 젊은 몸뚱이 하나로 그만한 위치에 오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역시 남다른 재능과 열정을 소유하고 있으며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하지만 '젊음'을 포함한 외적 매력은 재능과 더해질때 몇 배의 효과를 내기 마련이다.
수단이 무엇이든 그는 권력을 얻는데 성공하고, 젊고 재능있는 여자들을 후리고 다닌(듯이 보인)다. 인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자녀를 함께 키우는 파트너가 있건만, 그는 젊음에 취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개가 똥을 끊지,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도 한때는 어린 여성들에게 카리스마있고 성적 매력이 넘치는 대상이었을테지만, 한번으로 그치지 못하고 반복되는 바람은 더이상 로맨스가 아닌 추잡함이요 추문을 넘어 어떤 '혐의'일뿐이다.
영화에서 타르가 눈독들이는 젊고 재능있는 첼리스트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는데, 동승한 할배가 타르와 동행한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타르도 할배의 눈빛을 알아채곤 흠짓한다. 묻고 따지지도 않고 '젊음'이라면 환장하는 본능에 있어 타르는 그 할배와 다를바없다. 또한 할배는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타르의 존재는 전혀 안중에 없다. 늙음이란 때론 묻고 따지지도 않고 존재가 지워지는 일이라는 걸 타르는 순간 느꼈을까?
<타르>라는 인물자체가 워낙 복잡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많은 영화지만, 나의 생각이 가장 먼저 머문 곳은 바로 '젊음'에 관해서였다. 그건 아마도 내가 젊음에 집착하고 늙는 걸 서럽다 못해 타르처럼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2. 살아온 인생과 결과물의 관련성
영화가 던진 커다란 질문 중의 하나는 예술가의 삶과 결과물의 관련성에 관한 문제다. 쉽게 말해 도덕적으로 결함이있다 못해 인간 말종인 거장들의 결과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하는 질문에 관해서다. 타르는 예술을 감상(혹은 평가)하는데 있어서 작품 그 자체만 볼 것을, 그러니까 그의 삶의 행적은 어느정도 무시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건 그 역시 인생에 있어 여러가지 캥기는(?) 부분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젠더 감수성이 뛰어나고 더이상 무지하지 않은 요즘 사람들에겐 가당찮은 소리다. 이 이야기를 만든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가지고 있을까. 그건 아마도 결말에서 타르의 행적을 보면 대강 짐작할 수 있을 테다. 예술가라고 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갖은 범죄행위를 기행이나 기벽으로 덮던 시절은 끝났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