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심리 상담을 받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지장을 줄 정도로 마음의 병이 깊어졌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이런 결심은 살아오면서 이미 여러 번 해 본 것이다. 10대부터 우울한 성향이었고 십 수 년이 넘게 폭식과 같은 식이장애를 겪은 데다, 사람을 피하며 지낸 적도 여러 번, 주기적으로 감정조절이 힘든 시기가 있었고, 이런 게 피해의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경험했다. 그때마다 병원이나 상담 센터를 떠올리곤 했지만,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고, 거의 매번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진료 상담 이력이 남을까봐 걱정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흔히 갖는 편견 때문도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전업주부였던 나는 생활비에서 약간의 돈을 융통해서 나만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었고 우울함에서 벗어나고 삶의 의욕을 찾으려고 내가 취했던 방법들은 주로 ‘겉’을 돌보는데 돈을 쓰는 것이었다.
화장품을 사거나 매달 새 옷을 구매하는 건 일종의 의식이었다. 이걸 바르고 입으면 좀 지낼 만 할 거야. 염색이나 펌을 위해 정기적으로 찾는 미용실도, 피부과에서 시술을 받는 것도 보이는 걸 관리하며 속에 있는 문제를 지워보려는 노력이었다.
그렇게 매달 일정비용이 필요했고, 관리에는 끝이 없었다. 상담 센터를 검색해보다 이 돈이면 PT를 한 번 받고 말지, 하고 돌아서는 식이였다.
얼마간 돈을 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씀씀이는 갈수록 커졌고 내면을 돌볼 여유 같은 건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속을 돌보는 일은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나의 기준에서 큰 금액을 쓸 때면 버릇처럼 드는 생각이 있다. ‘남들은 샤넬 백도 사는데.’라는 생각이다. 샤넬 백에 비하면 심리 상담 비용은 매우 저렴한 편이다. 얼굴에 거뭇한 자국을 지우느라 돈을 쓰고 정기적으로 피부과에 눕듯이 아픈 마음을 돌보기 위해 돈을 쓰고 진료 의자에 앉아 증상을 호소하고 치료를 받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나는 그럴 만한 여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