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by 김모씨

“언젠가 세선도 이런 이야기를 하며 자꾸만 사람에게 붙들리는 자신이 싫다고 울었던 적이 있다. 혼자 잘 서 있고 싶어, 송화야. 아무에게도 영향 받기 싫은데, 자꾸 끌려가기 싫은데 그게 잘 안 돼. 나는 그 사람 생각을 하는데 그 사람은 내 생각을 하지 않아서 서러운 마음, 그런 것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 송화야.”

김화진 소설 <나주에 대하여> 수록 작 ‘쉬운 마음’ 241쪽


알 것 같은 마음이다. 나도 사람(들)을 좋아해서, 상대는 나를 그 만큼 좋아해주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한 적이, 고백하건데 아주 많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것도 쉽게. 타인이 가진 매력을 어렵지 않게 찾아내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 혼자 그 사람을 떠올리며 함께 한 시간과 대화를 곱씹으며,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궁리해 실천한다.


좋아하는 것에,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기쁨을 느끼는 것에 그친다면 참 좋겠지만 문제는 많은 경우, 상대에게 마음을 돌려받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기대를 하다 실망을 하고, 내 마음을 알 턱이 없는, 그래서 죄가 없는 상대를 원망한다. 상대가 친하다면 별 거 아닌 일로 심술을 부리고 갈등을 만들어내 어떤 식으로든 타격을 주려하기도 한다.

이제 아무에게도 잘 해주지 않겠어. 아니, 누구도 마음에 들이지 않을 거야. 상처를 받은 후엔 종종 이런 마음을 품기도 한다. 절대로 너의 매력에 빠지지 않겠어, 너를 돌아보고 상상하고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에 어떤 의미도 품지 않겠어. 다음 만남 같은 건 기대하지 않겠어.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그렇게 단단히 마음을 먹는 것부터가 그 사람이 좋다는 반증일뿐더러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길이 없다. 한 번의 눈 마주침에 마음은 무장해제 되고 ‘아무도 좋아하지 않겠다’는 의지에 반해 입 꼬리가 올라가고 혀가 짧아진다. 그리고 돌아서서 또 혼자만 좋아했다는, 돌아오지도 못할 마음을 품었다는 후회와 분노를 합친 자괴감에 휩싸인다.


한 편으로 궁금하다. 왜 내가 좋아하는 상대들은 나에게 그 마음을 돌려주지 않는 걸까. 왜 항상 내가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일까.

설마, 혹시 상대도 나 못지않게 나를 생각하고 좋아하는데 나 혼자 그 마음을 받지 못하고 억울해한 건 아니었을까. 내가 너무나 큰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것은, 뭐가 되었든 내가 준만큼 받아내겠다는 꼬인 심보는 아니었을까? (해답을 찾은 것도 같다.)


사람을 좋아하는 건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참 즐거운 일이다. 내가 준 마음만큼 돌려받으려하는 그 마음만 덜어낼 수 있다면. 혼자 잘 해준 게 억울해서, 상대에게 난 그만큼 의미가 크지 않은 게 속상해서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 일, 얼은 심장 흉내를 내며 사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것도 쉽게.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결국엔 상처로 남을지라도 그걸 고치는 건,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사는 건 어려울뿐더러 별로 행복하지도 않을 것 같다.


어젯밤, 나만 좋아하는 것 같아 억울했다고, 내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속상했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나의 속단과 이기심, 욕심을 확인한 자리이기도 했다. 누가 누굴 더 좋아하는 게 뭐 중요한 문제냐 물을 수도 있지만, 나에겐 중요한 문제다. 모든 억울함과 속상함, 비난과 분노 뒤에 숨은 말은 하나다. 그러니까 나를 좀 더 좋아해줘.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고 싶어. 나는 사람만큼이나 나 자신도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작가의 이전글겉과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