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쉬었던 독서 모임에 다시 나가기로 했다. 첫 주의 선정도서는 다행히 도서관에서 대출이 가능했다. 읽고 나니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었지만 구매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달 가계부를 정리해보니 다음 정산일 까지 열흘이 넘게 남았건만, 지출금액이 예상치를 훨씬 넘은 상태였다. 항목별로 자세히 나누어보니 역시나 쓰지 않아도 되는 항목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책 구입비용이다.
도대체 책은 왜 사는 걸까. 제일 큰 이유는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며,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는 거기에 돈을 쓰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한 번 다 읽으면 좀처럼 다시 볼 일이 안 생기는 책들을 사서 모았다.
그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복잡해진다. 어느 해인가 온라인 서점에서 한 해를 정산하며 받은 독서 구입 보고서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의 책 구입비는 30대 회원 중 상위 1%에 속해있었다. 상위 1%라니, 그간 살아오며 성적은 당연하거니와 재산 정도, 연봉, 지출 등등 숫자로 메겨지는 모든 것에 상위는 고사하고 평균에도 못 미치는 나에게 이 ‘독서 구입비 상위 1%’라는 타이틀은 의미가 컸다. 그렇게 나는 '많은 책을 사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이 생겼고,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을 돌아다니며 분수에 넘게 책을 구입하고 살았다.
대형 서점보다는 동네 책방을 좋아하는 편인데 책방 주인의 취향을 반영한, 대형 서점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서가 구성을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책방에서 이루어지는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모임이나 행사를 통해 그 지역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과 움직임을 응원하며 동참하려 한다. 모임에 꾸준히 나가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단골 서점이 생기기 시작했고, 책을 구입함으로써 책방 운영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한편으로는 책방 운영자에게 특별한 고객으로 여겨지고 싶은 욕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정기적으로 책방을 방문했고 소득에 비해 과한 돈을 책 구입비로 사용했다.
가계부를 정리하던 어느 오후, 이른 바 현타가 왔다. 이런 저런 일을 하며 번 돈은 모두 합쳐봐도 보잘 것 없는 돈이었다. 누가 누굴 위하는 건지, 알아주는 이 없는 ‘책 많이 사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은 왜 놓지 못하고 있는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건 책에 대한 애정이 덜하다는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책을 읽고 나서 나아진 게 있기는 한 건지, 결국은 보여주기 식 지출을 한 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고 결국에는 앞으로는 책을 사지 말자는 다짐까지 나아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다음 주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 나눌 책을 검색해보니 내가 거주하는 지역의 두 군데 도서관 모두 소장하고 있지 않았다. 희망도서 신청을 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그나마 거리가 가까운 인근 도시의 도서관 홈페이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회원카드가 없어 대출은 어려울 테니, 소장한 도서관에 가서 종일 책을 완독하고 올 작정이었다. 방문이 가능한 도서관을 모두 검색해보았지만 책을 소장한 곳은 찾을 수 없었다. 검색을 거듭한 끝에 전라남도 교육청 도서관에 소장 중인 책을 찾아냈다. 교육청은 무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책을 대출하는 건 포기하고, 예전에 살던 경기도 도시의 도서관에 책 제목을 검색해보았다. 사는 내내 문화의 변방이라 믿었는데 꽤 많은 도서관에서 책을 보유 중이었다. 지인에게 부탁을 해 택배로 받아볼까 하다가 그 번거러움과 염치없음에 빠르게 포기하고 결국 온라인 서점을 찾았다.
그간 모은 포인트 5,000점에 할인권 3장을 더해 총 8,000원의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온라인 서점에선 모든 책이 정가의 10% 할인 되어 판매된다. 모든 할인을 더하니 19,000원짜리 책을 9,100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다른 책은 몰라도 독서 모임 선정 도서만은 해당 서점에서 구매하는 게 나름의 원칙이라 믿었는데, 만 원남짓의 돈 앞에서 원칙은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사지 않으려고 그토록 애썼던 책이 문 앞에 도착했다. 아마 이 책은 소장가치가 차고도 넘칠 것이 분명하다. 모임 도서 선정을 위해 고민했을 누군가와 작은 책방을 지켜내고자 알게 모르게 노력하는 사람들, 가성비를 따지느라 머리 굴리지 않고 그저 순수하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살아온 경험과 혜안을 오랜 시간 공들여 책으로 펴낸 글쓴이와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다음 달엔 다른 항목들의 지출을 줄이고 책 구입비를 좀 더 늘여야겠다.